[시론] 평균의 종말 시대, 적정 공사비를 보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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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25회 작성일 26-02-06 09:22본문
만일 정부가 건설산업에 ‘올해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변함없이 ‘적정 공사비’라고 답할 것 같다. 하지만 오랜 세월 반복된 이 해묵은 과제는 이제 단순한 기준 조정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우리는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위기, 기술혁신, 지정학적 갈등, 원자재 변동성 등이 맞물린 대전환기 속에서 건설산업은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에 직면했다. 기존의 예측·계획 중심 시스템이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받는 이유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미국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이 말한 ‘평균의 종말(Average is over)’로 귀결된다. 코웬은 시장 양극화 속에서 ‘적당한 중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으며, 개별적 가치가 중요해진다고 짚었다. 본래 평균은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작동하지만,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조건별 격차는 벌어지고 미래는 더 이상 과거의 패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제 평균은 현실을 대변하기보다 오히려 판단을 왜곡하는 출발점이 될 뿐이다.
이 같은 ‘평균의 종말’은 건설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자재, 인력, 공법 등 모든 요소가 프로젝트마다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기준으로는 이러한 다양성을 담아낼 수 없다. 표준화된 기준과 단가는 오히려 개별 프로젝트의 특수성을 감추고 위험을 간과하게 만들며 계획과 실행의 오류를 낳는다.
그럼에도 공공 건설공사비 산정 제도는 여전히 평균과 표준을 전제로 작동한다.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 같은 제도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과거의 환경 속에서 탄생했다. 당시에는 표준화된 단가를 바탕으로 행정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으며, ‘표준’은 곧 형식적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기제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요동치는 자재 가격과 지역별 인력 수급 편차는 프로젝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현실을 외면한 채 과거의 평균값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왜곡된 판단을 낳고, 민간 기업에 과도한 리스크를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동안 정부도 적정 공사비 해결을 위해 낙찰률을 상향하거나 단가를 개정하며 현실화를 시도해 왔다. 하지만 사후적으로 조정되는 ‘표준’의 속도는 급변하는 시장의 변동성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이와 더불어 낙찰률 조정만으로 공사비 현안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평균적인 기초값’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내버려 둔 채 결과값만 미세 조정하는 ‘통계적 착시’에 머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유연성의 시대’로 들어서야 한다. 적정 공사비에 대한 인식이 수치가 아니라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구조와 원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적정 공사비는 더 이상 정해진 숫자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품질과 안전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유연한 대응 체계가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투명성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행히 현대의 진화한 기술은 과거 ‘평균’이라는 수치가 가졌던 정보의 왜곡과 한계를 보완하고, 시장의 실질적인 역동성을 투명하게 입증할 강력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정부와 건설업계의 과제는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유연하면서도 공정한 공사비 제도를 고안하는 것이다.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는 우려는 빅데이터와 실질적인 시장의 역동성을 포착하는 기술로 걷어낼 수 있다. AI 기반 실적 데이터를 반영하고, 변동 상황 발생 시 자동으로 조정되는 ‘조건부 트리거(trigger)’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모든 협의 과정이 투명하게 기록되는 디지털 계약 구조를 뒷받침해야 한다. 기술을 통한 객관적 투명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유연한 체계는 사회적 신뢰라는 토대 위에 설 수 있다.
공사비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 공사비는 적정한가?”가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을 얼마나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있는가?”이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숫자 이전의 인식이며, 활용해야 할 것은 진화한 기술이다. 평균의 종말 시대, 적정 공사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져야 한다.
김한수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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