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형 종심제의 역설] 중소사 견적능력 육성? "대행시장만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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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27회 작성일 25-12-18 09:19본문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간이형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는 2020년 정부가 중소 건설사의 견적 능력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기존 추정가격 10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 시설공사에 적용하던 적격심사제를 간이형 종심제로 전환하면서 “중소업체가 직접 내역서를 작성하고 기술력을 평가받을 기회를 주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제도는 정부 의도와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중소사들은 자체 견적 능력을 키우기는커녕 견적 대행 업체와 브로커에 더 의존하고, 동일 내역서를 제공받아 동가 투찰하는 실정이다.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은 “정부는 중소기업의 견적 능력을 키운다고 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며 “수백개사가 경쟁하는 구조에서 낙찰 확률은 1% 미만인데, 어느 중소기업이 수천만원의 연봉을 주며 견적 인력을 상시 보유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중소사가 자체 견적 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의지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특리지구 다목적농촌용수개발사업’의 경우 입찰에 139개사가 참여해 낙찰 확률은 0.7%에 불과하다. ‘국립울산 탄소중립 전문과학관 건립사업’은 774개사가 몰려 낙찰 확률이 0.13%까지 떨어진다.
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월급 300만원대 견적 인력을 상시 고용하면 연간 5000만원 이상 고정비가 든다”며 “100건 넣어 1건 낙찰되는 구조에서 이런 투자가 가능하겠느냐. 차라리 건당 100만~200만원 주고 대행업체에 맡기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토로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간이형 종심제 1건당 견적 대행 비용은 100만∼300만원 선이다. 반면 자체 견적팀을 꾸리려면 최소 2명 이상 인력이 필요하고, 이는 연간 1억원 이상의 고정비를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자체 견적이 오히려 불리하다는 점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대행업체들이 균형가격을 예측해 1~2원 단위로 쪼갠 내역서를 배포하는데, 자체 견적으로는 이런 정밀도를 맞출 수 없다”며 “동가 투찰 구조에서는 대행업체 의존이 합리적 선택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한 내역 대행업체 관계자도 “균형가격을 예측해 1~2원 단위로 쪼갠 내역서를 여러 업체에 배포하는 게 관행”이라며 “이런 식으로 특정 가격대에 수십개사를 ‘배치’하다 보니 복수의 동가 투찰률이 70%를 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부가 간이형 종심제를 통해 오히려 견적 대행 시장만 키우고 브로커를 입찰시장의 키플레이어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23년 간이형 종심제의 평균 입찰자 수는 608개사로, 일반 종심제(56개사)의 10배가 넘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토목ㆍ건축공사까지 복수 동가 투찰률이 80%를 넘어 간이형 종심제가 회복 불가능한 지점까지 왔다고 평가한다.
한 지역 건설사 대표는 “토목ㆍ건축공사도 복수 동가 투찰률이 80%를 넘어 이제는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며 “특정 공종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자체의 구조적 한계가 전 공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고 있다는 점을 정부가 유의깊에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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