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주로칼럼] ‘입찰 브로커’의 종심제 담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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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4-10-25 09:14본문
지난 달 10일 조달청이 심사한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 방식의‘고양창릉 S-6BL 아파트 건설공사 3공구’에서 동가 입찰로 인해 무효사 두 군데가 나오며 종합심사 1순위 업체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이후 이달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개찰한‘경북대 캠퍼스 혁신파크 HUB동 건설공사’에서 는 같은 이유로 무려 4개사가 무효사로 전락했다.
동가 입찰이란 서로 다른 회사가 제출한 내역금액이 똑같다는 뜻이다. 베끼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인데, 상식적으로 경쟁상대에게 자사의 내역서를 보여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동가 입찰이 발생한 이유는 바로 입찰 브로커 때문이다.
국내 건설사 중 견적팀을 통해 스스로 내역서를 작성하는 업체는 많아 봤자 50여개사 정도에 불과하다. 그 외 건설사들은 3∼4개 대행업체 프로그램을 통해 내역을 작성한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마저 합법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건설사들이 많다는 점이다. 보통 중견 건설사 공공업무팀에 오래 있었던 일부 직원이 거액의 성공보수를 받고 4∼5개 건설사의 견적을 대행한다. 이들 브로커는 프로그램으로 받은 견적을 여러 업체에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복사ㆍ붙여넣기를 한 건설사들이 동가 입찰로 걸린 셈이다.
조달청은 이미 작년에 시설공사에 한해 내역서 작성 대행은 불법이 아니라고 유권해석했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한 외주용역의 일환으로 판단한 것이다.
조달청의 해석은 틀리지 않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프로그램을 악용해 ‘입찰 브로커’를 하고 다니는 일부 건설사 직원이다. 본인이 소속된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다른 건설사의 내역서를 작성해주는 것은 일종의 배임행위다. 심지어 내역서를 공유하는 것은 유사 담합행위이기도 하다. 종심제의 특성을 악용해 조별 투찰 금액을 특정 구간으로 모아 이 중 한 업체가 공사를 낙찰받도록 유도함으로써 브로커가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인데, 이미 의심 업체들이 이달 들어 LH 사업을 연이어 수주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규정으로는 이들을 처벌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조달청은 ‘타인의 산출내역서와 복사 등의 방법으로 동일하게 작성한 산출내역서가 첨부된 입찰’은 무효로 처분하는 규정은 갖고 있지만, 이들 업체가 브로커로부터 내역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공은 차세대 나라장터로 넘어간다. 차세대 나라장터를 통해 입찰 내역작성 및 개인인증을 한층 강화해 건설사가 내역서를 스스로 작성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은 건설업계의 몫이다. 직접 내역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 브로커에게 성공보수를 약속하고 내역서를 공짜로 받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미 특정 건설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4∼5개 건설사의 내역서를 대리 작성해주는 이 브로커는 또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들이 저지르는 유사담합 행위로 인해 정당하게 수주한 사업을 놓친 건설사들은 또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이제는 답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최지희 기자 jh606@ <대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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