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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찰 부추기는 분리발주] 中企 육성하려다 카르텔만 키운다...전형적 '킬러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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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4-01-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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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공종 분리 전세계서 유일
전기·소방·통신 등 '따로따로'
사실상 '반쪽 짜리' 기술형입찰
레미콘 담합해도 구매처 못 바꿔
공사 실행률 떨어져 사업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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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작년 4월 발주된 기본설계 기술제안 방식, 추정금액 491억원 규모의 ‘홍성군 신청사 건립공사’. 3번째 진행된 입찰에서도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 서류 제출 마감일까지 단 한 군데의 건설사도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며 유찰됐다. 전기ㆍ통신ㆍ소방 공사에 이어 관급자재까지 분리발주하며 일찌감치 ‘반쪽 짜리 기술형입찰’로 낙인이 찍혀 외면을 받은 탓이다.

해당 사업이 발주됐던 시점은 이미 글로벌 원자재 수급대란의 여파를 맞아, 공사비 부족 문제로 설계ㆍ시공 일괄입찰(턴키)과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 기술제안 방식의 주요 국책사업들이 줄줄이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해 유찰되던 시점이었다.

이에 조달청은 유찰 방지를 위해 건설사에 불리한 ‘독소조항’을 없앤다는 취지로 입찰안내서 심사까지 강화했지만, 사업성 악화의 핵심인 ‘분리발주’는 건드리지 못하다 보니 유찰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해당 사업은 5차례 유찰 끝에 통합발주로 선회, 현재 수의계약 전환이 진행 중이다.

◆업역 이기주의에 갇힌 ‘분리발주’

과도한 분리발주로 유찰된 사례는 ‘홍성군 신청사 건립공사’뿐만이 아니다. 최근 발주되는 주요 국책사업 대부분이 공종ㆍ자재 분리발주를 강요하며 공사 실행률이 저하돼, 건설사들이 사업 참여를 끝내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설계와 시공이 결합돼 진행하는 기술형입찰 형태의 사업에서 제도적으로 자재와 공종의 분리발주를 의무화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국가계약법 및 지방계약법령상 단일공사에 대한 분할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관급자재에 대해서도 효율성ㆍ하자책임 구분ㆍ공정관리 영향 등을 따져 제한적으로만 분리발주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개별법을 통한 분리발주 의무 규제가 확대되며 상위법의 취지는 무색해지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과 ‘업역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한 애매한 행정을 이어가며 산업을 죽이는 ‘독소조항’이 입찰 제도 전반에 신설되고 있는 탓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공사 분리발주다.

작년 12월까지 산업통상자원부는 턴키의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전기공사 통합발주를 허용하는 ‘전기공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막판에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조달청 등 관계부처의 강력한 반대에 가로막히며 개정이 틀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안심하긴 이르다.

이미 작년 11월 전력시설물의 설계ㆍ감리 분리발주를 의무화한 전력기술관리법이 시행됐고, 한 달 뒤 소방시설 설계ㆍ감리 분리발주를 의무화하는 소방시설공사업법이 발의되는 등 이권 단체의 입김이 들어간 입법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는 탓이다.

◆ 분리발주로 이권 카르텔만 심화

특히 분리발주는 업역 카르텔로 진화해 건설현장 전반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지난 24일 청주권 레미콘 업계는 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건설현장에 레미콘 공급을 중단하며 청주지역 주요 건설현장이 셧다운되는 일이 발생했다.

세종지역 레미콘사 관계자는 “작년 레미콘 조합의 가격 조작 문제가 제기되며 조달청이 증빙자료 검증을 강화하자, 올해 관급 단가가 하락할까봐 운송노조와 손을 잡고 건설현장을 볼모로 건설사들에 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공급을 중단해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레미콘은 건설현장의 대표적인 관급자재이지만, 동시에 자재업체(조합) 간 상습적 담합에 의한 예산 낭비의 대표 사례로 지목받기도 한다.

청주지역에서처럼 업계가 담합해도 건설사들은 구매처를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 현행 중소기업 판로지원법상 추정가격 40억원 이상 공사에 대해서는 관급자재 적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탓이다. 수요기관이 건설사업에 필요한 자재를 직접 구입해 건설사에 나눠주도록 한 전 세계 유일무이한 제도로, 공사를 담당한 건설사가 수급 불안 및 품질 문제로 자재를 직접 구매하려 해도 지방중소기업청장과 협의를 거치도록 강제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국책사업의 품질 관리는 뒷전으로 돌린 전형적인 ‘킬러규제’다.

박희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작년 ‘인천 검단 사고’가 발생한 후 공사용 직접구매자재 활용 경험이 있는 전국 331개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4.3%가 ‘관급자재로 공사지연 및 품질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며, “관급자재는 시공사가 기술력을 발휘해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합리적으로 계획을 수립할 수 없게 하는 최대 걸림돌인 만큼 반드시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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