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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입찰 참가 선택권과 글로벌 톱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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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73회 작성일 23-08-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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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 출범과 함께 해외시장 확대 정책이 힘을 받는다.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국정비전 슬로건에서 성장 무대로 글로벌 시장을 지목했다. 국정과제 실천을 위해 지난 2월 발표한 신산업성장 동력 4.0에 해외수주를 포함시켰다. 주관부처 국토교통부는 건설을 글로벌 톱4(global top 4, G4)에 진입시키기 위해 2027년까지 연평균 500억 달러 수주 목표 달성을 선언했다. 성장 무대를 글로벌로 확대시키면서 역대 정부보다 해외건설 시장 진출에 관심을 보이자 산업체도 수주 확대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기서 강한 의문이 제기된다. 글로벌 톱4의 정의가 무엇인가? 해외건설 수주액이 제4위라는 양적 순위를 나타내는가? 미국건설전문지 ENR이 매년 8월 말에 발표하는 해외시장 매출액 기준 250대 회사의 통계에서 제4위라는 의미인가? 연평균 500억 달러는 수주액 기준이다. ENR지는 매출액 기준이어서 1 대 1로 비교할 수 없다. ENR지는 상위 250대 기업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건설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달성한 매출액 집계가 아니다. 국가별 해외시장 매출액이나 수주액을 통계로 발표하는 기관이나 잡지는 없다. 250대 밖의 건설기업과 설계ㆍ엔지니어링 매출액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1980년 8월 ENR지가 한국을 해외시장에서 달성한 매출액 기준 2위로 평가했었다. 그 당시 누구도 한국건설이 세계 제2위에 올랐다고 인정하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당시 국내 산업체가 달성했던 수주와 매출 대부분이 중동국가에 집중돼 있었다. 매출액 기준이 세계 제2위 국가라면 한국건설은 이미 43년 전에 달성했었다. 일부에서 한국이 세계 2위까지 올랐다고 주장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톱4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두 가지 예를 들어 글로벌 톱4 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려 한다.

첫 번 예는 2023년 창립 125년을 맞이한 미국 벡텔사 얘기다. 벡텔사가 1980년대 중반부터 수주 및 매출액이 떨어지고 수익성마저 하락하자 외부에서 100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벡텔 역시 위기를 체감했다. 수주액이 급감하는 주된 이유는 자국 내 발주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벡텔이 주력했던 원전건설이 1979년 3월 미국쓰리마일아일랜드(TMI) 사고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원전건설이 급감했던 것도 주요 원인이었다. 당시 미국 내 매출 75%, 해외 매출 25%였다. 최고경영진은 줄어든 내수시장의 대체를 해외시장에서 찾는 전략을 수립했다. 3년이 채 경과되지 않아 벡텔이 다시 1위 자리로 복귀했다는 전광판이 샌프란시스코 본사 건물 벽을 장식했다. 1위 복귀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 해외 매출 75%, 국내 매출 25%로 3년 전과 반전된 상황이 있었다. 3년만에 국내와 해외 매출 비중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기반 경영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두 번째 예는 한국 원전건설 및 운영관련 기술이다. 21세기 초입부터 일부 국가이기는 했지만 원전건설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원전은 기술과 안전성이 가격보다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에 검증된 기술과 경험이 없으면 신규 원전건설에 참여하기 어렵다. 세계 어떤 국가든 신규로 원전을 건설하거나 성능개선을 하고자 하면 입찰자 명부에 한국원전을 포함시킨다. 입찰 명부에 한국원전 생태계를 지목해도 입찰 참여 여부 결정권은 해당국가가 아닌 한국원전 생태계에 달려있다. 한국원전이 타국보다 짧은 공기, 낮은 공사비, 높은 신뢰성과 안전성을 기록으로 실증하기 때문이다.

수주액 크기(量)로 순위를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기술력(質)을 기반으로 한 입찰 참가 여부에 대한 선택권으로 평가할 것인지 정부와 산업계 차원에서 정립해야 한다. 물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수주를 확대하면 된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기업은 수익성을 목표한다. 수익성 없는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다. 입찰명부는 발주자 고유 권한이지만 입찰 참가 여부에 대한 선택권은 기업에 있다. 재량권과 선택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기업체가 많을수록 해외시장 경쟁력이 높아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 <대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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