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Focus

[권혁용의 건설이슈 파이팅]기술형입찰 설계심의-발주처가 '승부조작' 방관하는 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20회 작성일 23-04-20 09:33

본문

발주처의 교수 등 외부인력 활용은 승부조작 책임 회피하려는 것

로비가 적격사 가르는 기술형입찰 설계심의-승부조작과 다름 아니다
축구협회 승부조작 연루자 사면에 흥분하면서 기술형입찰 승부조작엔 둔감

 

202304181650228440715-2-369690.png

우리사회에서 공정과 관련한 이슈는 언제나 파급력이 크다. 최근 축구협회가 승부조작 연루 등의 사유로 징계 중인 축구인 100명의 사면을 결정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사면결정은 철회됐고 회장을 제외한 집행부가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일이 커진 것은 사면대상에 승부조작에 연루된 사람들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CJ ENM이 한 PD의 재입사를 놓고 파장의 한 가운데 섰던 것도 재입사한 PD가 아이돌 오디션 ‘프로듀스’ 시리즈의 투표를 조작해 법의 심판을 받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승부조작은 불공정의 대표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건설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입찰에서 공정성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다. 제도에 따라 유불리는 있을 수 있어도 어느 특정기업을 밀어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곧 부정입찰이 되는 것이다. 국가계약법에는 부정입찰을 막기 위해 청렴계약이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서 투명성 및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입찰자 또는 계약상대자로 하여금 입찰ㆍ낙찰, 계약체결 또는 계약이행 등의 과정에서 직ㆍ간접적으로 금품ㆍ향응 등을 주거나 받지 아니할 것을 약정하게 하고 이를 지키지 아니한 경우에는 해당 입찰ㆍ낙찰을 취소하거나 계약을 해제ㆍ해지할 수 있다는 조건의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입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국고의 부담이 되는 경쟁입찰에서는 예정가격 이하에서 최저가격 순으로 낙찰우선권이 주어지고 계약이행능력 등을 심사해 낙찰사를 결정한다. 이것이 기본이고 여기에 저촉받지 않는 입찰이 대형공사입찰과 기술제안입찰이다. 대형공사입찰은 추정가격 300억원 이상의 신규복합공종공사에 적용하고 기술제안입찰은 상징성ㆍ기념성ㆍ예술성 등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적용하는 입찰방법이다. 공정성을 유지하면서 경쟁력이 있는 우수한 업체를 시공사로 선정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의 입찰제도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교수 등 외부인력 활용하는 설계심의

최저가격 순으로 낙찰자가 결정되는 입찰에서는 공정성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는다. 문제는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가는 대형공사입찰과 기술제안입찰, 일명 기술형입찰이다. 보통은 기술경쟁을 촉발한다는 취지로 설계심의 결과에 따라 낙찰사를 결정한다. 설계심의라는게 주관적인 평가이다보니 입찰참여사들은 평가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공정성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발주처들은 심의위원 선정부터 조심스럽다. 대개는 임직원들로 구성된 내부위원과 교수 등으로 이뤄진 외부위원을 고루 활용한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3건의 기술형 입찰을 집행했는데 심의위원에 내부위원과 교수 등 외부위원, 중앙기술심의위원회(중심위)위원 등을 균형있게 배치했다. 내부위원을 6명으로 하고 외부위원과 중심위위원을 4∼6명을 배치해 총 16∼17명의 심의위원을 꾸렸다.

국가철도공단은 지난해 집행한 10건의 기술형 입찰에서 심의위원을 많게는 17명, 적게는 12명으로 구성했다. 내부위원이 6∼9명이 들어갔고 외부위원 2∼3명, 중심위위원 3∼6명 등이 배정됐다. 내부위원과 중심위위원을 포함한 외부위원의 비율을 50대50으로 균형을 맞췄다. 심의위원수가 홀수일 경우에는 내부위원을 1명 더 많게 하거나 외부위원이 1명 더 많게 하는 식으로 심의위원수를 구성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와 올해 총 4건의 기술형 입찰을 집행했다. 심의위원은 총 15명으로 구성했는데 내부가 8∼9명, 외부가 6∼7명이다. 외부보다 내부위원의 비중을 높게 구성한게 특징이다. 심의위원 구성을 외부위원에만 의존하는 발주처들도 있다. 항만공사들이 대표적이다. 인천항만공사는 지난 2021년 집행한 인천신항 컨테이너부도 1-2단계 하부공 축조공사의 심의위원을 모두 중심위 위원으로 채웠다. 부산항만공사도 지난 2018년 집행한 부산항 신항 서컨테이너터미널(2-6단계)의 심사위원 15명을 중심위 위원으로 구성했고 지난 2021년 집행한 부산항 신항 북컨2단계 배후조성은 내부위원 1명만 넣고 나머지 16명을 중심위 위원으로 꾸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지난 2018년까지는 내부와 외부위원을 고루 배정했으나 지난 2021년 집행한 행정중심복합도시 들목교 및 6생활권 외곽순환도로부터는 외부위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 공사의 경우 15명의 심의위원을 외부위원 8명, 중심위위원 7명 등으로 구성했다.

서울시는 내부위원과 외부위원을 함께 배정하는데, 대부분 내부위원의 비중을 높게 간다. 서울시가 올해 발주한 동부간선 지하화는 내부위원 8명, 외부위원 7명으로 구성됐다.

-일반화된 로비에 문제의식 없어져

전문성있는 외부인력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지금의 기술형입찰 설계심의는 공정할까. 이 질문에 “공정하다”고 답할 건설업체 종사자는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만난 건설업체 종사자들 모두 심의위원 로비의 문제를 크게 우려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로비를 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적격업체 선정이 심의위원 로비에 의해 좌우되다보니 입찰에 참여한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로비의 도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단순히 심의에 올라가는 설계물의 장점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전이 오가고 그 액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심지어는 입찰참가사들이 흥정의 대상이 된다고도 한다. 심의위원에 선정된 것을 알리며 로비에 나설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여러 발주처로부터 받은 심의위원이나 자문위원 위촉장을 자랑하며 은연중 관리해 줄 것을 내비치기도 한다고 한다.

최근 서울소재 한 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를 사석에서 만났다. 기술형입찰의 로비문제가 화제가 됐는데, 그는 몇년전부터 기술형입찰 심의위원으로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심의위원으로 선정돼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섰는데, 집앞에 자가용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타라고 해서 보니, 건설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대학교 동창이 운전석에 있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심의위원을 하면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귀찮아지겠구나 하고요.”

기술형입찰에서 심의위원을 상대로한 로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리고 건설업체들 모두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속되고 있고 로비의 판은 더 커지고 있다. 지난 2009년 경찰조사로 번진 파주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입찰의 로비의혹은 심의위원에 선정된 한 교수가 건설사의 금품로비를 폭로하면서 이뤄졌다. 로비라는게 은밀하게 이뤄지다보니 폭로나 고발이 없으면 찾아내기 어렵다.

-발주처가 주도하고 책임도 져야

로비에 의해 적격사 선정이 좌우되는 것은 승부조작과 다름없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운동경기의 승부조작에는 민감하면서 기술형입찰의 승부조작에는 둔감하다. 발주처들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수수방관하고 있다. 기껏해야 심의위원 선정의 보안유지에만 신경쓰고 있다. 심의위원들이 입찰참가사에 “나 심의위원에 들어갔소” 하고 광고를 하고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발주처들이 설계심의에 외부인력을 많이 활용하는 것은 승부조작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선택일지 모른다. 조달청은 지난 2018년 기술제안입찰방식인 한국은행 통합별관 신축공사로 홍역을 치른 후 심의에서 내부위원을 배제했다. 그러다 올해 설계심의분과위원 선정부터 다시 내부위원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지난 2021년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사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됨에 따라 혁신방안을 만들어 각종 심의에서 내부위원을 배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초 선정한 14기 기술심사평가위원을 100% 외부인원으로 선정했다.

이종욱 조달청장은 올초 다시 내부위원을 포함하면서 “조달청이 집행하는 시설공사 시공사를 선정하는데, 조달청에서 사업 이해도가 가장 높은 내부위원, 즉 전문가를 배제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규모가 있는 발주처들은 수백에서 수천의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고속도로 건설에 관한 한 한국도로공사 임직원들이 가장 잘 안다. 택지개발과 아파트 건설에 대해선 LH 임직원들이 전문가다. 이런 전문가들을 보유하고도 교수 등 외부인력에 적격사 선정을 맡기는 것은 직무유기다.

기술형 입찰의 시공사 선정은 발주처가 책임지고 주도해야 한다. 건설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직원들을 상대로 한 로비가 더 어렵다고 한다. 비리가 적발될 경우 잃을 것이 많다보니 로비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교수 등 외부인력은 많은 사람들이 로비에 죄의식조차 없는 상태라고 한다. 지난해 대한건설협회 회장단과 조달청장 간 간담회에서 내부위원 복귀가 건의 안건으로 올라온 것은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일반화된 로비를 감시하는데도 발주처에 적격사 선정의 책임을 주는 것이 유리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교수 등 외부인력에게 행해지는 로비는 폭로나 고발이 없으면 잡아내기 어렵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서다. 하지만 발주처는 내부 감사에 관할부처의 감사기능까지 더해 비리를 감시할 장치들이 많다. 이들 장치를 잘 활용하면 충분히 로비의 위험을 차단할 수 있다. 여기에 발주처 임직원의 부정행위에 대해 일벌백계의 처벌을 내리는 것도 필요하다. 현행 외부인력 중심의 설계심의 로비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정부나 발주처가 애써 모른 체하는 사이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지고 있다.   <대한경제 권혁용주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