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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낙찰률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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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499회 작성일 17-03-2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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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가낙찰제 시절이던 2012년 9월의 일이다. 한전 발전자회사 중 한 곳에서 발전소 공사 입찰을 실시했다. 당시 12개사가 참여한 입찰에서 2개사만을 제외하고 무더기로 탈락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투찰가가 예가의 100%를 넘은 것이다. 복수예가가 아닌 단일예가가 적용됐는데, 이게 너무 낮았던 탓이다. 설계가에 무려 19%(230억원)나 차이가 났다.

‘살아남은’ 2개사의 투찰률은 90%를 훨씬 넘겼다. 탈락사들이 ‘갑의 횡포’라며 분개한 건 당연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은 추후 공사를 수주한 업체에서 “기사 작성 때 낙찰률을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한 것이다. 최저가의 평균 낙찰률이 75%인 상황에서 90%대 낙찰률은 부담이 되었으리라는 짐작이다.

지난달 16일 행정자치부는 건설업계의 우려를 뒤로하고 종합평가낙찰제(종평제) 낙찰자 결정기준을 개정, 시행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가격평가 산식을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와 똑같이 만들어 낙찰률을 떨어뜨리기 위함이다.

종평제와 종심제는 지난해 최저가를 대신해 본격 시행됐다. 1년 시행 결과 종평제의 평균 낙찰률(88%)이 종심제(79%)보다 10%p 가까이 높기 때문에 손질이 필요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낙찰률에 감춰진 속내는 그리 간단치 않다. 종평제의 경우 지자체가 빡빡한 예산 속에 무리하게 공사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단가와 물량 등을 정상보다 적게 책정함에 따라 낙찰률이 종심제보다 높게 형성되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해 광주도시공사가 자체 발주한 광주역 행복주택 건립공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애초 광주도시공사는 조달청을 통한 중앙발주를 추진했다. 그러나 협의 과정에서 조달청이 적용하는 공사원가 제비율은 예산부족으로 맞춰줄 수 없다면서 계약요청을 철회하고 자체 발주로 돌아섰다. 그 결과 낙찰률은 94.6%로 치솟았다. 공사를 수주한 업체는 벌써부터 손실 걱정에 잠을 잘 못 이룬다는 후문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정부는 낙찰률의 숫자만 보고 깎아내린 꼴이다.

낙찰률에 대한 정부와 발주기관의 ‘히스테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말 유찰에 따른 기술형입찰의 수의계약 전환을 담은 계약예규를 개정,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계약금액은 설계단가를 기초로 하되, 유사공사에 대한 종심제 낙찰률을 고려하도록 했다. 90% 안팎의 기술형입찰 낙찰률을 적용해도 적자가 예상돼 건설사들이 피하는 상황에서, 종심제 낙찰률을 고려하라는 발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올해 시범사업으로 준비 중인 순수내역입찰과 시공책임형CM 등 새로운 입찰제도들도 낙찰률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각 발주기관의 특례운용기준을 살펴보면 입찰가격을 예가의 70∼80%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 80% 언저리에서 수렴하는 모양새다. 건설산업의 낙찰률에 대해 정부, 발주기관, 심지어 일부 건설사까지도 90%는 높고 70%는 낮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착각이 일 정도이다. 90%면 예산낭비에 건설사들의 부당이득, 70%면 예산절감에 건설사들의 저가수주 또는 출혈경쟁. 도대체 100원짜리 공사를 80원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건설경제 정회훈 공공건설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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