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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구두계약 후 발뺌하는 발주처에 "이자까지 물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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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150회 작성일 16-02-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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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변경 서면증거 없어도 '추가공사비' 지급 첫 판결

작업시간 단축은 곧 설계변경…추가공사비 지급해야

‘이의제기 금지 합의서’…발주처가 일방적 작성한 것


# k건설사와 서울시 S구(발주처)는 지난 2009년‘00대로 하수암거 확충 공사’계약을 체결했다. 공사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주처는 K사에 작업시간을 반으로 줄이라고 지시했다. 공사현장 주변 교통량이 많아 안전 등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서울지방경찰청의 의견 때문이었다. 작업시간이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어들자, 공사 효율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K사는 인력과 장비를 더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발주처는 공사비를 추가로 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그러나 공사가 완료되자 발주처는 추가공사비를 주지 않았다. 추가공사비를 주겠다는 어떤 서면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약 사항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합의서도 있었다. 둘은 소송까지 갔다. 법원은 시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발주처에 추가공사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말의 항소심은 이자까지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발주처는 상고하지 못했다.

법원이 추가공사비 지급 소송에서 건설현장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설계변경과 계약금액 조정 계약서 등 서면 증거가 없는데도, 여러 정황을 고려해 추가공사비를 인정해준 것이다. 구두로 추가 작업을 지시한 후 막상 공사비가 늘어나자 발뺌한 발주처에 추가 공사비는 물론 이자까지 물어주라고 한 판결에 건설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26민사부는 지난해 말 경기도 소재 K건설사가 서울특별시 S구를 상대로 제기한 ‘추가공사비 지급 청구소송’에서 “피고(S구)는 원고(K건설사)에게 12억7000만원(추가공사비)과 이에 대한 약정이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발주처가 줘야 할 돈은 총 22억7000만원이다.

이 판결은 설계변경이 없었는데도 법원이 구체적인 건설공사 현실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설계변경을 인정해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작업시간 단축으로 공사비 증가"…기술적 부분 감안

'이의제기 금지합의서'도 발주처가 일방적 작성

법원, 증거로 인정 안해

발주처-시공사 합리적 협업문화 조성 기대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공사 도중 수 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이는 대부분 공사비 증가로 이어진다. 그러나 현장은 바쁘다. 변수가 생길 때마다 추가공사비 지급의 근거가 되는 ‘설계변경계약’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공공 발주처는 서면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관행이 있고, 시공사 역시 ‘을’의 위치에서 서류를 남기자고 끝까지 요구하기 어렵다.

K사가 서울시 S구를 상대로 제기한 ‘추가공사비 지급 청구 소송’ 사건 역시 설계변경은 없었고, 추가공사비에 대한 서면약속도 없었다.

그러나 법원은 설계변경의 의미를 넓게 해석했다. S구의 요구로 공사시방서 보다 작업시간이 단축됐고, 그만큼 공사에 투입한 인원ㆍ장비가 늘어난 건 설계변경에 해당하고, 따라서 계약금액을 조정(증액)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K사 측 변론을 맡은 손수일, 전선애 변호사(법무법인 로쿨)는 “발주처가 추가공사를 구두로 지시한 게 설계변경 지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간접설계변경과 관련한 국내 사례는 이제껏 없었다”고 말했다. 작업시간 단축으로 공사비가 증가하는 등 ‘건설현장’의 세밀하고 기술적인 부분까지 법원이 고려해 설계변경으로 인정한 것을 찾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법무법인 동인 김성근 변호사는 “그동안 설계변경 구두약정을 인정한 판례가 드물게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제삼자(감리원)의 증언 등 다른 증거가 충분한 경우에 한정된다”며 “이처럼 법원이 구두증거를 받아들이고 설계변경을 인정한 사례는 특이하다”고 말했다.

법원은 작업시간 단축으로 인한 할증률도 209%를 인정했다. 발주처가 애초 적용하려던 할증률은 25%에 불과하다.

재판부는 “많은 교통량 때문에 당일굴착 당일 복구를 하다 보니 작업능률이 현저하게 저하된 점 등을 고려해 209%의 할증률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할증률이란 공사 자재의 운반, 시공 중 발생하는 손실량을 보충하기 위해 정해놓는 기준이다.

이의제기 금지 합의서 같은 실질 증거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합의서에 대해 “피고(S구)가 일방적, 일률적으로 작성한 것일 뿐”이라며 K사가 추가공사비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볼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의 기술적 부분을 들여다보고 할증률을 제시한 것으로, ‘불공정 합의서’ 같은 건설현장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한 판결이 반갑다”면서도 “더 중요한 건 발주처와 시공사 모두가 원칙에 맞게 합리적으로 협업하는 문화가 조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기자 ys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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