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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공공조달행정의 운영철학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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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766회 작성일 15-07-1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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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정경부장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인재, 기술, 인류공헌을 기반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경영철학이 바탕이 됐다. 현대ㆍ기아차도 ‘품질경영ㆍ현장경영ㆍ뚝심경영’이라는 경영철학을 통해 자동차 산업에서 놀라운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가 아닌 이상 조직을 운영하는 데는 반드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국가에는 국정철학이 있고 기업에는 경영철학이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요즘 공공조달시장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하나의 의문이 든다. 공공조달행정은 도대체 어떤 철학을 갖고 운영하고 있는가다.

  조달청은 최근 공사비가 1700억원이 넘는 초대형 공사인 청주시 국도대체우회도로(북일∼남일1) 건설공사를 여섯 번째 입찰공고했다. 이번 입찰공고에서는 낙찰자 결정을 위한 가중치 기준 중 가격비중이 45%가 적용됐다. 연초 첫 입찰공고에서 가격비중이 35%였던 것과 비교하면 10%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기술제안형 입찰에서 가격비중이 35%라면 시공사의 기술력을 중시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선이 폐광을 포함한 산악지대를 통과하고 터널과 교량이 많은 점을 감안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경쟁입찰요건이 성립되지 않아 여섯 차례 입찰공고가 이뤄지면서 가격비중이 40%를 거쳐 45%까지 올라갔다.

  이 공사가 그동안 다섯 차례나 유찰된 이유는 난공사인 데 비해 공사비가 턱없이 박하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공사비를 올려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조달행정은 가격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이뤄졌다. 가격비중을 높이면 싼값의 설계로 덤핑할 건설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까. 그렇다면 당초 이 공사의 입찰을 기술제안형으로 결정하고 가격비중을 35%로 책정한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전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헌법은 대통령이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국정철학의 교과서”라는 말을 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원내대표를 사퇴하면서 “헌법 1조1항을 지키고 싶었다”고 얘기한 것을 언급하면서다. 정치적인 해석을 떠나 국정철학이 헌법에서 나와야 함은 당연한 얘기다. 마찬가지로 공공조달행정의 운영철학은 국가계약법령과 맥을 같이 해야 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한 것이 국가계약법령이기 때문이다.

  국가계약법은 국고의 부담이 되는 경쟁입찰의 낙찰자 선정 기준을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이 허투루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있어야 할 기준이다. 하지만 국가계약법은 시행령에 대형공사계약이라는 규정을 둬 추정가격 300억원 이상 신규복합공사 중 필요성이 인정되면 기술형입찰에 부치도록 하고 있다. 시설물의 특성에 따라 가격과 품질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여지를 둔 것이다. 또 예정가격의 결정은 재료비, 노무비, 경비, 일반관리비, 이윤 등을 기준에 따라 산정해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다. 제값을 매겨 공사비를 산정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계약은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돼야 하며 당사자는 계약의 내용을 신의성실에 따라 이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요즘 공공 발주기관들의 불공정 행위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산부족을 이유로 한참 지난 설계내역을 그대로 발주하는가 하면 간접비 등 줘야 할 돈을 주지 않아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불공정 행위가 만연한 것은 공공 발주기관들이 조달행정의 운영철학 없이 사업집행에 나서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건설시장은 공공 발주기관들에 거창한 운영철학을 기대하지 않는다. 최소 국가계약법령에 근거한 운영철학만이라도 정립했으면 하는 게 시장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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