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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엔지니어링산업 선진화, 국제표준에서 길 찾아라 ① 해외사업자 선정, 모든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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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441회 작성일 15-03-0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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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발주제, 책임의식 강조...`업무중복도'필요성 못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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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지니어링 산업이 ‘외화내빈’의 상황에 직면한 가장 큰 원인으로 산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국제 기준과 크게 동떨어진 국내의 낙찰자 선정방식 제도를 꼽는다.

 건설경제와 한국조달연구원, 산업계가 FIDIC(국제 컨설턴트 엔지니어링연맹) 및 다자간개발은행(MDB), 미국, 일본 등의 사업자 선정방식을 심도있게 조사한 결과 한국 발주제도에만 특정한 평가항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인 것이 참여기술자의 실적건수와 업무중복도 항목이다.

 기술자 한 명이 그동안 수행한 유사사업 건수에 초점을 맞춘 양적 평가 방식에 의해 사업자를 선정하다 보니, 성과품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업무중복도’ 평가항목이 신설되는 식으로 기형적 발주제도가 자리 잡았다.

 ◆ 해외에는 없는 ‘업무중복도’평가항목

 해외 발주기관들은 ‘업무중복도’를 아예 보지 않는다. 해외 오픈 마켓과 선진국의 자국 내 사업발주에서 ‘업무중복도’란 평가항목 자체가 없다.

 오픈 마켓의 경우는 사업을 수주한 업체의 기술자가 사업 발주국가에 어차피 상주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중복도’를 볼 필요가 없고, 선진국은 대부분 기술자가 한 개의 사업에만 참여해도 회사가 운영될 수 있도록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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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 브루나이 파드마 교량사업 발주 당시의 참여기술자 평가 양식. 기술자의 업무 실적건수와 기간 보다는 수행업무 내용을 서술형으로 설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해외통’으로 불리는 조충영 평화엔지니어링 사장은 선진국이 업무중복도를 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율경쟁과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해외의 시장제도가 발주방식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충영 사장은 “해외 발주기관은 건설 엔지니어링 업체가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되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한다”며 “발주처 측 엔지니어가 설계단계에서 설계업체의 성과품을 심사하며 기준에 미달할 경우 시정 명령을 내리고 시정기간 동안 대가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수행능력평가 과정에서 업무중복도를 고려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해외는 설계시작 전 양측이 협의해 설계 단계별 요구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한다. 이후 설계단계 과정에서 발주처가 요구한 수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시정이 될 때까지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발주처는 설계변경요소 비용을 추가로 지급하지도 않는다. 만약 시정이 되지 않거나 계속해서 설계수준이 미달될 경우 발주처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이에 더해 손해배상청구까지 가능하다.

 해외 사업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링 업체의 담당자들은 이 같은 해외 발주처의 계약방식이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각 업체와 기술자의 능력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능력이 좋은 기술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에 맞게 설계업무에 참여하고, 만약 계약내용을 맞추지 못하면 전적으로 당사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시장경쟁 논리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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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PQ형 기술자, 해외에서는 안 통한다”

 도화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사실상 업무중복도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업체가 자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끔 풀어놓고 참여업체가 자발적으로 설계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엔지니어링 산업의 특성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참여기술자의 역량을 실적건수와 참여기간 등 정량화된 잣대로 평가하는 것 역시 국내만의 특징이다.

 해외에서는 기술자 평가 시 참여기술자의 실적건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참여기술자가 어떤 프로젝트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참여기술자는 자신의 이력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해 제출해야 하고, 참여사업 각각에 대한 업무수행 내용도 상세하게 작성해야 한다. 이후 발주처 정보를 기술해 경력에 대한 확인작업을 거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국내의 양적 평가 방식은 기술능력이 뛰어난 기술자보다는 PQ형 기술자를 우대하는 시장환경을 조성한다.

 젊은 실무형 기술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열심히 실무경력을 쌓아도 PQ형 기술자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현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보다 발주기관 출신의 기술직 공무원이 더 우대받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청한,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기술자는 “한국에서는 기술사 자격증만 취득하면 그 자격이 기술자의 기술수준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미국은 자격은 쉽게 주고 그 기술자가 계속해서 경쟁력을 갖고 일하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단 한건의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해당 기술자의 전문지식과 경험 및 역량을 얼마나 갖췄느냐가 중요한, 경쟁력 있는 기술자만 살아남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통용되는 ‘PQ형 기술자’는 외국에서 전혀 경쟁력이 없고 의미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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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엔지니어링 산업의 현주소

 

 가장 최근인 2012년 실시된 정부의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조사에 따르면 2007년 엔지니어링 서비스의 매출액은 6조8736억원, 2012년에는 12조8712억원이다. 6년 사이 산업 매출액의 87.3%가 증가한 셈이다. 이 중 건설엔지니어링 서비스업은 2007년 4조209억원, 2012년에는 6조6281억원을 기록하며 64.8%가 증가했다.

 그런데 이 통계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매출액이 87.3%나 증가했는데 사업이익률은 1.51% 감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 엔지니어링의 경우는 2007년 8.4%에 달했던 사업이익률이 2012년 4.9%로 급감했다. 이는 엔지니어링 산업의 ‘외화내빈’상황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국엔지니어링협회가 작년 발간한 ‘2013 엔지니어링 산업백서’에 따르면 엔지니어링 산업은 2006년과 비교해 기준 생산액은 37%, 수출액은 355%, 시장 규모는 49%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전체 산업에 엔지니어링산업의 비중은 2006년 0.75%에서 2011년 0.66%로 떨어지며 12%나 감소했다. 경제성장 기여율 역시 2006년에는 1.54%를 기록했지만, 2011년에는 -0.04%를 기록했다.

 외형상 실적은 증가하고 있지만, 국가 균형적 발전을 고려할 때 타 산업만큼 내실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수치다.

 하지만 전체 산업 내에서 엔지니어링 산업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2014년 한국은행이 발간한 산업연관표를 보면 엔지니어링산업의 부가가치율은 2011년 기준 65.25%다. 이는 건설업(32.1%)의 2배, 제조업(21.12%)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엔지니어링 산업의 취업 유발계수는 11.9명으로 건설업의 1.5배, 제조업의 4배에 달한다. 산업의 규모가 10억원이 늘어날 경우 제조업은 고작 2.9명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제공되는 반면 엔지니어링 산업은 약 12명을 신규 채용한다는 얘기다.

 이 처럼 국가 전략산업으로서 차지하는 의미가 상당함에도 엔지니어링 산업에 대한 대접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링 업체수는 1만2000여개로, 종사자 수 18만7000명에 매출액은 180억달러 규모다.

 반면 미국의 사업체수는 5만9500여개, 종사자 수 98만9170명, 매출액은 1934억달러에 달한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사업체 수 2만7600여개, 종사자 수 42만4200명, 매출액은 800억달러다.

 국가별 매출액 기준으로만 따지면 미국이 한국의 10배, 일본은 4배 이상의 시장 규모를 보유한 셈이다.

 언뜻 국가 규모가 크니 매출액도 크다는 식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 있지만 통계를 한 번 더 짚어보면 의미심장한 사실이 드러난다.

 바로 종사자 1인당 생산성인데 한국의 종사자 1인당 매출액은 9만6000달러에 그치는 반면, 미국은 19만6000달러, 일본은 18만9000달러다.

 미국과 일본은 국가 규모와 상관없이 1인당 매출액이 엇비슷하게 나오는데 우리나라만 이들 국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이 같은 1인당 매출액의 급격한 차이는 1인당 하루 노임단가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 기술사와 특급기술자, 초급기술자의 평균 하루 노임단가는 203달러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우리나라의 2.5배(518달러), 일본은 1.8배(369달러)에 달한다.

 결국 산업 종사자들의 1인당 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 노임단가는 40% 정도에 그치는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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