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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종합심사제가 집중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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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03회 작성일 13-09-2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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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세종대 교수)

 “종합심사제의 기본 철학은 발주청에 가장 유리한 입찰(most advantageous tender)이 무엇인지를 발주청 스스로가 정의하고 고민해서 가장 책임성(responsible) 있는 사업자를 직접 뽑으라는 것이다.”

 최근 건설업계의 화두로 종합심사제가 자주 떠오른다. 관련 기사와 민심을 읽어보면 총론적으로는 환영하면서도 각론적으로는 종합 심사제를 지지하는 의견을 찾기 어렵다. 종합심사제의 도입을 추진한 주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시장 반응이 몹시 서운할 것 같다. 최저가 낙찰제의 ‘구원투수’로 등판시킨 것인데 응원보다는 불평이 많으니 말이다.

 최근 종합심사제를 둘러싼 논란은 가격 평가의 기준점은 무엇이며, 비가격 평가항목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인지 등과 같은 디테일(details)에 집중되어 있다. 문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디테일을 어떻게 정하든지 누군가는 반드시 불만스러워 할 것이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문제를 붙들고 정부가 고민하기보다는 기본 철학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떨지.

 종합심사제의 기본 철학은 발주청에 가장 유리한 입찰이 무엇인지를 발주청 스스로가 정의하고 고민해서 가장 책임성 있는 사업자를 직접 뽑으라는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기준을 정해주겠다는 것 자체가 종합 심사제의 기본 철학과는 맞지 않는다.

 발주청의 가치(value)를 반영하는 가장 유리한 입찰이라는 역동성을 어떻게 제도라는 딱딱한 그릇에 제대로 담을 수 있겠는가? 가장 유리한 입찰이라는 것은 각 발주청마다 다를 수 있고, 각 사업마다 다를 수 있으며 동일 사업에서도 공구마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큰 틀과 방향만 정해주고, 세부적인 사항은 발주청에 일임해 스스로 고민하고 학습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발주청의 역량이나 투명성이 문제라면 이를 강화시키면 된다.

 사업자에게 확실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종합 심사제가 운영되는 것도 중요하다. 종합심사제는 책임성 있는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가격뿐만 아니라 비가격 요소까지도 평가하는 것이다. 책임성 있는 사업자로 잘 골라 뽑아야 하고, 일단 뽑았으면 확실하게 책임을 지게 하라는 의미이다.

 종합심사제 도입에 따른 최저낙찰가율 하한선이나 덤핑 방지책에 대한 고민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대책은 없는 것이 순리다. 저가 출혈경쟁을 걱정하는 기업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작위적인 가격보전 대책은 오히려 종합심사제의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 사업자가 상식 이하의 저가로 낙찰에 성공하더라도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하면 된다. 내역 및 가격 심사를 강화하고 감리 제도, 보증 제도, 하도급 직불 제도 등 기존의 다양한 제도를 적절하게 활용하자.

 처음에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만 일관성·지속성 있게 운영해 보자. 무책임한 가격이 자신의 비즈니스에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건설산업 내에서 학습효과가 생길 때까지만.  몇 해 전 들었던 한 건설기업인의 독백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무제한 최저가 낙찰제라도 정부가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행했다면 무책임한 저가 입찰의 관행은 사라졌을 것이다.”

 종합심사제에 대해 정부는 디테일이 아니라 다음 세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종합심사제라는 세련된(sophisticated) 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발주청의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이다. 우선 발주 경험이 많은 상시(常時) 발주청부터 시작하고, 발주 경험·역량이 부족한 단속적(斷續的) 발주청에는 컨설팅이나 아웃소싱의 길을 열어주면 된다.

 둘째는 종합심사제가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반드시 그 책임을 발주청에 묻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권한을 주는 동시에 이에 합당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책임성이 있다고 평가되어 선정된 낙찰자에게는 자신의 제안과 가격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만일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종합 심사제는 그냥 비싸기만 한 입낙찰제도가 될 위험성이 높다. 종합심사제의 성패는 제도적 디테일이 아니라 자율성, 효율성, 투명성, 책임성이라는 운영의 키워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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