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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적격심사제 개선 고집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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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24회 작성일 12-05-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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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산업팀장

 정부가 당사자가 되는 계약의 기본은 경쟁입찰이다. 필요에 따라 자격을 제한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 낙찰자를 선정할 때는 세입이냐, 세출이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국가에 돈이 들어오는 경우라면 최고가격을 쓴 입찰자를 낙찰자로 결정하지만 반대로 돈을 지출해야 하는 경우라면 최저가격을 쓴 입찰자를 낙찰자로 결정한다.

 이것만 보면 정부는 꽤나 영악한 경제주체라고 할 수 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 경제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계약 전반에 흐르고 있는 기조를 보면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가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분배와 조정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능력 있고 규모 있는 기업에 계약이 몰리는 것을 막아 중소 또는 지역업체들이 정부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를 요소요소에 마련해 두고 있다.

 경쟁입찰에 있어서는 중소업체 모임인 조합의 경우 특별한 자격 없이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그리고 공동도급제도를 통해 중소 또는 지역소재 업체들이 수행능력을 뛰어넘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형사끼리의 독식을 막기 위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형 10대사 공동도급 제한 규정’까지 두고 있다. 아울러 이윤을 포함한 원가산정 기준을 정해 계약 상대자에게 적정이윤을 보장해 주려는 것이 정부의 계약제도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성장과 분배 논쟁이 한창인데, 국가계약에서는 적어도 수년을 앞서 분배에 초점을 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적격심사제 개선방안을 놓고 전국에서 설명회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해당 지역 건설업체들의 반발로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와 대구에 이어 16일 부산지역 설명회까지 무산된 것이다. 정부는 100억~300억원 미만의 공공공사를 대상으로 새로운 입찰제도를 적용하려고 하는데 이를 두고 건설업체들이 가격으로 낙찰사를 결정하는 최저가제의 확대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적격심사제가 운찰제로 변질됐고 변별력이 거의 없어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니다. 운찰제로 전락한 적격심사제의 문제점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만이 분배는 아니다. 적정한 이윤을 보장해주고 입찰참여에 따른 비용을 줄여주는 것도 분배다. 100억~300억원 미만의 적격심사제 공사는 그 규모가 2010년 기준 5조5000억원이다. 이는 2010년 당시 전체 공공공사 46조1000억원의 8.3%에 해당한다. 이들 공사를 수주하는 건설업체는 주로 3등급부터 6등급까지로 모두 2181개사다. 중소기업법으로 따지면 중소기업의 범주에 포함된다. 지역 입장에서 보면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업체들이다.

 이렇게 보면 현행 300억원 미만의 적격심사제 공사는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중소업체를 보호하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분배정책의 일환으로 사용해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공시장에서 300억원 미만 공사의 비중이 금액으로 30%쯤 된다고 하니 나머지 70%인 최저가제 공사나 기술형 입찰방식의 공사를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건설산업과 건설기업의 경쟁력을 충분히 높일 수 있을 것이다. 1만1000개가 넘는 건설업체 모두의 경쟁력을 높일 순 없다. 또한 국내건설산업의 규모를 볼 때 그럴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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