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바보야, 문제는 방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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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54회 작성일 15-12-23 10:46본문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마차를 만났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마부는 기꺼이 태워주었다. “예루살렘까지 여기서 얼마나 먼가요?” “이 정도 속도라면 30분 정도 걸리지요.” 나그네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30분 정도 지났다. “예루살렘에 다 왔나요?” “여기서 1시간 거리입니다.” “아니 아까 30분 거리라고 했고 그새 30분이 지났잖아요.” “이 마차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마차요.”
지인이 SNS로 보내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여기에 “한해가 어느새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동안 잘 달려왔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 되길 바란다.”라는 연말인사도 곁들여진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방향이 중요한 것은 인생뿐이 아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해마다 발표하는 경제 등 중요한 정책에는 ‘방향’이라는 표제어가 붙는다. 이를 통해 가야 할 길과 길의 폭을 정한다. 목표를 달성하고자 설정한 개별 방안들이 옆으로 삐져나가고 흩어져 효과가 반감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한해를 돌아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정책이 있다. 계약 관련이다. 연초 건설인들은 나름 희망을 안고 출발했다. 건설투자가 늘고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비정상의 정상화 바람이 공공시장에도 불 것이라는 기대감에 설렜다. 실적공사비가 폐지되고 기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제도로 낙인찍혀온 최저가낙찰제도를 대신할 종합심사낙찰제 시범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저가경쟁으로 인한 품질 저하, 산업재해 우려 등의 폐해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2년간의 시범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거꾸로는 아니지만, 옆길로 새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참여 기회 확대를 요구하며 3차례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한 때문만은 아니다. 일부 발주기관에서 예산절감과 행정 편의를 위해 의혹을 무릅쓰고 최저가방식으로 연말에 밀어내기 발주를 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종합심사낙찰제와 관련된 모든 논의가 가격이라는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발주기관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종심제 관련 계약예규는 낙찰률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데만 매몰돼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술형입찰은 옆길로 샌 차원이 아니다. 역주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나 기술제안으로 발주된 공사는 참여 업체가 없어 줄줄이 유찰됐다. 청주시국도대체우회도로(북일~남일1) 기술제안, 정부통합전산센터(공주) 턴키는 각각 6회나 유찰되기도 했다. 뻔히 손해가 나는 공사에 누가 참여하느냐는 게 시공사들의 항변이다. 기술에 걸맞은 가격을 쳐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술경쟁을 통해 고품질 시공물을 구현하는 동시에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킨다는 제도 취지는 이미 퇴색한 지 오래다. 시장이 바뀌었음에도 발주기관들은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는 셈이다.
계약제도나 정책에 솔로몬의 지혜는 없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목표는 있다. 제도나 정책을 통해 실현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목표가 흔들리면 방향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계약제도는 가격에 함몰돼 목표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가격에 공정성과 경쟁력 등이 모두 담겨 있다는 주장에도 일부 수긍은 간다. 그러나 가격은 수단이나 요소일 뿐이다. 지금은 목적이 돼버린 느낌이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안전, 그리고 기업 나아가 한국건설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해야 할 공공공사 본연의 가치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공공공사는 원초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예산, 돈이 모든 정책의 잣대인 기획재정부가 계약제도의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말이다.
박봉식기자 parkbs@
지인이 SNS로 보내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여기에 “한해가 어느새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동안 잘 달려왔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 되길 바란다.”라는 연말인사도 곁들여진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방향이 중요한 것은 인생뿐이 아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해마다 발표하는 경제 등 중요한 정책에는 ‘방향’이라는 표제어가 붙는다. 이를 통해 가야 할 길과 길의 폭을 정한다. 목표를 달성하고자 설정한 개별 방안들이 옆으로 삐져나가고 흩어져 효과가 반감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한해를 돌아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정책이 있다. 계약 관련이다. 연초 건설인들은 나름 희망을 안고 출발했다. 건설투자가 늘고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비정상의 정상화 바람이 공공시장에도 불 것이라는 기대감에 설렜다. 실적공사비가 폐지되고 기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제도로 낙인찍혀온 최저가낙찰제도를 대신할 종합심사낙찰제 시범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저가경쟁으로 인한 품질 저하, 산업재해 우려 등의 폐해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2년간의 시범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거꾸로는 아니지만, 옆길로 새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참여 기회 확대를 요구하며 3차례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한 때문만은 아니다. 일부 발주기관에서 예산절감과 행정 편의를 위해 의혹을 무릅쓰고 최저가방식으로 연말에 밀어내기 발주를 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종합심사낙찰제와 관련된 모든 논의가 가격이라는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발주기관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종심제 관련 계약예규는 낙찰률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데만 매몰돼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술형입찰은 옆길로 샌 차원이 아니다. 역주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나 기술제안으로 발주된 공사는 참여 업체가 없어 줄줄이 유찰됐다. 청주시국도대체우회도로(북일~남일1) 기술제안, 정부통합전산센터(공주) 턴키는 각각 6회나 유찰되기도 했다. 뻔히 손해가 나는 공사에 누가 참여하느냐는 게 시공사들의 항변이다. 기술에 걸맞은 가격을 쳐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술경쟁을 통해 고품질 시공물을 구현하는 동시에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킨다는 제도 취지는 이미 퇴색한 지 오래다. 시장이 바뀌었음에도 발주기관들은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는 셈이다.
계약제도나 정책에 솔로몬의 지혜는 없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목표는 있다. 제도나 정책을 통해 실현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목표가 흔들리면 방향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계약제도는 가격에 함몰돼 목표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가격에 공정성과 경쟁력 등이 모두 담겨 있다는 주장에도 일부 수긍은 간다. 그러나 가격은 수단이나 요소일 뿐이다. 지금은 목적이 돼버린 느낌이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안전, 그리고 기업 나아가 한국건설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해야 할 공공공사 본연의 가치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공공공사는 원초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예산, 돈이 모든 정책의 잣대인 기획재정부가 계약제도의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말이다.
박봉식기자 par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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