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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담합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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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24회 작성일 15-12-0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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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이는 듣기만 해도 울렁증을 일으키는 말이다. 건설산업계에 숱한 상흔을 남긴 태풍과도 같은 존재인 까닭이다. 경기 침체, 수익성 악화, 구조조정, 부실 공사 등은 건설인들을 옥죄온 단어들이다. 결코 가볍지 않지만 감내하고 때로는 삭이고 있다. 그러나 담합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왠지 울렁증에 현기증까지 생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동시다발적 담합 조사로 불기 시작한 태풍은 표면적으로 잦아든 듯하다. 8ㆍ15 사면 이후 사회공헌기금 조성, 손해배상 소송 등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슈에서는 비켜 서 있다. 건설인들도 자제하고 있다. 상처가 깊기도 하지만 반칙을 했다는 부끄러움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바닥에는 회한과 분노가 깔려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삼중, 사중 처벌의 부당함은 제쳐놓더라도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취소청구 소송에서‘정부가 담합을 묵인 조장하기도 했다’고 드러내놓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목구멍으로 삼키고 있다. ‘사면까지 받은 마당에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하면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의 주장에 공감하는 학계와 언론계의 시선도 많았다.‘담합 건설사에만 돌을 던질 일인가’,‘담합 벌주려면 담합 강제한 부처부터 처벌하라’는 돌직구형 칼럼과 사설이 잇따랐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오롯이 건설기업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입찰 시스템 등 제도, 환경, 산업구조적 요인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담합 당사자의 사정을 고려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혈세를 낭비한 집단을 옹호한다는 화살을 맞기가 십상인 탓이다. 그럼에도 이런 글과 연구 결과가 공개적으로 나온 데는 무엇인지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방증이다. 건설기업에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제도와 운용이 원초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건설인들의 하소연이 지청구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8ㆍ15 사면 이후 담합은 감추고 싶은 단어가 된 느낌이다. 과문(寡聞)해서 인지는 몰라도 사면 이후 4개월이 지났지만 담합 방지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을 강화하겠다는 채찍 소리만 들린다. 드러난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나 노력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사면이 2000년대 들어 4번째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힐난하기도 하다. 그러나 3번, 같은 돌부리에 걸려 사고가 났음에도 이를 캐내지 않은 데도 책임이 있다. 이러니 무능한 정부, 무책임한 정부를 넘어 헐값 공사에, 과징금에, 손해배상까지 챙기는 ‘담기정(담합을 기다리는 정부)’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법도 하다. 간통사건을 캐내 부수입을 챙기는 형사 이야기를 그린 ‘간기남(간통을 기다리는 남자)’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채찍만으로 담합의 뿌리를 뽑을 수는 없다. 원인이 무인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듯 담합에도 이유가 있다. 과거 담합은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손해 보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업계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생계형 담합’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만약 정부나 시민단체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담합으로 수조원의 이익을 챙겼다면 건설사들은 함포고복(含哺鼓腹)해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공공공사에 등을 돌리고 있다. 박터지던 기술형 입찰은 참여하지 않아 줄줄이 유찰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품질만큼만 가격을 쳐달라는 하소연을 감정이 아니라 이성의 귀로 들어야 한다. 그래야 위법은 인정하지만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는 억울하다는 풍토가 없어지고, 공정한 입찰문화가 정립되고, 새로운 건설문화가 싹튼다.

박봉식기자 par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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