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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신의 한 수와 사람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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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69회 작성일 16-01-0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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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반복되는 익숙한 질문이 이번에도 어김없다. 올해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본다. 필자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신의 한 수를 기대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한 번 던져보는 질문일까. 질문을 하는 입장은 그냥 지나가는 질문이 아니라는 걸 매번 느낀다. 점쟁이 혹은 도사 수준의 답변을 기다리는 질문에는 난처할 때가 많다. 운수대통이라는 말로 가볍게 넘어갈 수도 없다.

 정말 신의 한 수가 있을까. 복권이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통사람의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신의 한 수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신의 한 수를 던질 만큼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신의 한 수는 있겠지만 복권 당첨 확률보다 낮다. 문제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속한 건설기업 혹은 엔지니어링업체 대부분이 신의 한 수를 기대하면서 꼼수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국내 수주는 최고액을 기록했다. 해외 수주는 전년도보다 30% 이상 떨어졌다. 내수 시장으로만 본다면 기업이나 건설인들이 신이 나야하는데 현상은 정반대다. 일감이 늘어났다고 하면서도 신규 채용은 고사하고 기존 인력마저 줄였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면서 중장기 목표나 전략은 수립하지 않는다. 인건비를 절감하고 기타 경비를 줄여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것이다. 전형적인 꼼수다. 신의 한 수를 기대하면도 실제 경영은 꼼수로 일관한다.

 기업들이 당면한 기술 무시 혹은 경시 현상을 짚어보자. 기술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최첨단ㆍ최신 기술을 최고 기술이라 주장한다. 기술 구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나 기술이 전공이 아닌 사람이 기술을 경시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기술이 별 것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런 사람의 대부분이 꼭 내세우는 전제가 있다. “기술은 잘 모르지만”이다. 모르기 때문에 기술이 별 것 아니라 한다.

 기술을 아는 사람도 故 정주영 회장이 구사했던 주베일 산업항 재킷공법이나 아산만방조제 유조선공법은 “정주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정 회장만이 가질 수 있는 신의 한 수일까. 필자가 알고 있는 정 회장은 기술자도 아니었고 학자도 아니었다. 백가지 지식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다만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할까를 남보다 더 고민했던 실행가였다. 과감한 도전이 몸에 배어 있었으며, 일에 대한 오너십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신의 한 수에 해당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국내 건설이 기술 전략과 전술을 잃어버렸다. 더 정확히는 포기했다. 전략과 전술은 꼼수가 아닌 정수다. 국내 건설의 성장 배경에는 전투력으로 무장한 기술자와 근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략과 전술 없이도 성장할 수 있었다. 기술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가격이 아닌 기술력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알고 있으면서도 기술력 강화를 위한 전략이나 전술이 없었다. 전투력에 해당하는 실무 지식과 경험은 제3자의 힘으로 어느 선까지는 성취할 수 있다.

 전략과 전술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기술력으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이다. 전략과 전술은 일선이 아닌 경영진이 포진해 있는 본사의 역할과 책임이다. 전략과 전술의 역량 강화 없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 보이지는 않지만 한국 건설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배하는 핵심이다.

 국내 건설이 더 이상 가격 경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기술력이지만 어떤 전문지식이 필요한지도 알고 있다. 알고 있는 데까지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과 전술의 오너십은 실종됐다. 최첨단ㆍ최신 기술을 요구하면서도 구체적인 용도는 밝히지 못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술 혁신은 빙산으로 표현된다. 보이는 10%보다 보이지 않는 90%가 훨씬 더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기술은 보이지만 전략과 전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기술은 지배를 받지만 전략과 전술은 기술을 지배한다. 기술을 모르고서는 제대로 된 전략과 전술 강화의 방향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건설은 가격이 지배하는 도급사업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한다. 민간 투자개발형이나 계약자금융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개발형이나 금융 방식을 지배하는 역량은 사업모델, 수익 모델, 그리고 금융 등 설계 능력이다. 문제는 기존 교육기관이 이 부문에 대해서는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은 이를 요구하지만 교육 프로그램은 아직 여기까지 이르지 못했다.

 사업이나 수익 모델 설계는 꼼수로는 풀 수 없는 숙제다. 신의 한 수는 극단적인 예외일 뿐이다. 필요하지만 부족함을 알고 있는 기업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꼼수도 신의 한 수도 아닌 정수 혹은 상수로 가야 하는 게 국내 건설이 처한 현실이다.

이복남(서울대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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