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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건설정책과 스위스 치즈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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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76회 작성일 16-02-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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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제5차 건설산업진흥기본계획’수립에 착수했다. 그 동안 토론석상에서 나왔던 ‘선진국형의 획기적인 발주방주 방식 전환’에 대한 요구를 과감히 수렴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토부는 2일 건설산업비전포럼에서 관계자 20여명에게 초안을 공개했다. 포럼에 참석했던 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일단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고, 일부는 국토부가 개념 설정부터 실패했으며 건설의 미래가치를 전혀 담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이번에는 국토부의 의지가 남다른 것 같다’는 반응들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설관련 정책은 스위스 치즈를 연상시킨다. 구멍이 뚫린 스위스 치즈(슬라이스)를 여러장 겹쳐보자. 불규칙하게 발생한 구멍들인 만큼 일직선상에 놓일 확률은 거의 없으니 젓가락으로 치즈들을 모두 관통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치즈의 구멍들이 일직선상에 놓인다면? 그 구멍을 통해 치즈의 부패와 손상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의 건설정책은 매번 개정 때마다 구멍이 있었다. 그러나 크지는 않았고 재개정을 전제로 그대로 시행됐다. 그렇게 여러 개의 구멍 있는 정책들이 계속 추가됐고, 어느 순간 그 구멍들이 일직선상에 놓이기 시작했다. 예산을 쏟아부어도, 인력을 투입해도, 더 정교하게 손질을 해봐도 구멍을 통해 결정적인 작동 오류의 문제가 발생했다. 작동 오류는 현장과 정책의 엇박자를 심화시켰고, 국토부 정책은 ‘탁상행정’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번 국토부의 제5차 기본계획에는 업계 대표나 임원이 아닌, 현장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실무진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도 담겨 있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지식을 축적하는 동물이다. 시행착오를 뇌 속에 저장하고,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유일한 종이다. 그런데 왜 그 집단지성이 정책 입안 시스템에서는 구현되지 않는 걸까. 외국에서는 이미 정책 결정에 온라인을 통한 ‘집단 의사결정’ 방식들을 활용하고 있다. 뉴질랜드 웰링턴 시의회는 ‘주류 제한 정책’을 개정할 때 스타트업 기업이 만든 소프트웨어‘루미오’를 활용했다. 시의회는 술집 주인, 학생, 주거권 시민단체, 주류 업체, 응급서비스센터, 청소년, 금주캠페인 운동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는 장을 루미오에서 열었다. 토론이 진행되면서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할 때는 시의회 공무원이 정보를 제공해 질적 토론이 가능했다. 그렇게 대중이 합의한 가장 합리적인 정책이 탄생했다. 진화란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국토부 정책 역시 완전히 새롭게 진화할 수 있다. 스위스 치즈의 구멍들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구멍 없는 치즈 한 장을 중간에 끼워넣는 것 뿐이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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