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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재정 조기집행과 조삼모사(朝三暮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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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64회 작성일 16-02-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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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해인 올해 원숭이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법한 사자성어가 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중국 전국시대 송(宋)에 원숭이를 키우는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살림이 어려워져 먹이를 줄여야 할 형편에 놓였다.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아침에 도토리를 3개, 저녁에 4개를 주면 어떠냐고 물었다. 이에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이 성어는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이나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여 희롱한다는 비유로 사용된다. 어느 쪽이든, 듣는 원숭이 기분이 좋지는 않을 듯하다. 잔꾀에 속은 어리석은 동물로 치부된 까닭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원숭이가 반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침에 4개를 받아 아침에 2개, 점심에 2개를 먹는 등 탄력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다른 원숭이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도 있다.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고 상황이 불확실하면 미리 챙기는 것이 유리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가 예상 밖으로 빠르게 가라앉는 경제를 살리고자 재정 조기집행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제정책 방향을 세우고 실행한 지 한 달 만에 보완책을 내놓은 것은 대내외 여건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골자는 1분기 자금 집행규모를 계획보다 21조원 이상 늘린다는 것이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조원 많은 125조원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었는데 여기에 6조원을 추가하고 공기업 투자 등을 확대했다. 이 경우 1분기 재정집행률은 30%, 상반기는 58%로 높아지게 된다. 전형적인 조삼모사이다.

조기집행은 건설사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다. 지난 2년간 반짝했던 주택건설경기가 꺾이며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한 건이라도 더 수주하고 한 푼이라도 미리 챙겨야 하는 상황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원숭이처럼 기뻐할 수만은 없다. 마음 한구석이 마뜩지가 않다는 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이 꼼수만 부리는 느낌 때문만은 아니다. 하반기에 재정고갈로 투자가 급격히 떨어지는 투자절벽을 걱정해서도 아니다. 인프라시설에 대한 정부의 철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인프라사업은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재정적 측면만이 아니다. 철학은 물론 비전도 없었다. 선거 때 이슈나 집권 초 정책기조가 복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한정된 재원을 쪼개야 하기 때문에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인프라가 복지의 반대 개념으로 인식되는 웃지못할 해프닝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높아진 안전 인프라에 대한 관심도 지금은 흐지부지다. 대통령과 정부는 남의 나라 인프라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고 국민 복지의 출발점인 국내 인프라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의 후유증과 ‘토건’ 논란 등을 고려해 애써 거리두기를 해왔다는 분석이 틀리지만은 않은 듯하다. 이제 그 망령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막연한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인프라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새롭게 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더는 복지를 입이 닳도록 얘기하면서도 정작 가장 기초이자 근본인 주거, 교통, 생활 등 공간복지는 안중에도 없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인프라투자가 지역균형발전, 일자리 창출 등에 효율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도 더 이상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인프라투자에 대한 바른 방향을 정립하는 것도 시급하다. 정략적, 정치적 필요가 아니라 안전과 편익향상의 생활밀착형 인프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착한 인프라시설 말이다. 그래야 경제가 살고, 국민이 살고, 미래가 산다.

박봉식기자 par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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