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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대로 하기’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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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76회 작성일 16-02-1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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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로 대한이 낀 주에 수도권은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다. 극한 추위지만 길 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추위를 반긴다. 겨울이 추워야 한다는 당연한 인식 때문이다. 기본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 정책 총괄 책임자인 국토부장관은 국내 건설이 살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 간판 건설기업의 대표자들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신년사에 담았다. 건설기술 발전을 총괄하는 연구기관은 건설이 살기 위해서는 건설을 버려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정책과 산업,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대로는 성장은 고사하고 생존하기조차 힘들어졌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다른 공통점으로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문하는 것만으로 건설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충분한지 혹은 최소 조건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상대방이 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변화가 먼저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도 아닐 것이다.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경제보다 건설의 위상이 더 높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 얻은 내수 시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검증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열정으로 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고급 기술력에서는 선진기업과 비교할 수준은 못되었지만 열정이 몸에 배어 있고 검증된 기술력은 가성비가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 세계 시장이 아니었어도 우리 기술력과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중동 시장에서 국내 건설은 덩치를 키워 왔다. 그러나 기술력과 인건비, 열정 등이 어우러진 가성비 우위는 시한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내수 시장은 커진 덩치를 유지할 만한 규모를 받쳐주지 못했다. 국제 시장은 가성비가 아닌 기술과 관리 전문성이 어우러진 역량이 필요해졌다. 현재 국내외 시장 양쪽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음이 분명하다.

 시장 변화를 읽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익숙해져 있는 열정은 청년들에게는 이제 ‘열정 페이’라는 부정적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건비에 비해 기술력이 낮아 기능공은 물론 기술자까지 신흥국 인력이 투입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성비가 높았던 시절에 건설업체는 물론 엔지니어링업체들이 보유했던 기술과 활용의 오너십이 전문공사업체로 넘어 갔다. 기술력 향상을 통한 생산성 혁신보다 하도급 단가 삭감을 통한 원가 줄이기에 올인했다. 가격 경쟁력을 본인이 아닌 타인의 힘에 의존하는 사태가 너무 일반화되어 버렸다. 건설업체들이 보유한 기술은 사장되고 하도급업체들은 기술력을 향상시킬 여력을 잃어버렸다. 현재 우리 건설의 모습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하다.

 리딩 기업의 수장들이 신년사에서 밝힌 ‘기본 회귀’는 잘하기보다 제대로 하기에 방점을 찍었다. 제대로 하기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다. 제도로 하기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바탕으로 한다. 이에 비해 잘하기는 경쟁자보다 앞서야 하는 상대평가다. 잘하기는 연속성을 가지기 힘들다. 노력하지 않으면 잘하기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이 가진 가성비는 선진기업은 물론 신흥국 기업과 비교해 우위에 있었다. 가성비가 시간과 노력에 의해 좌우됨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결과가 오늘을 만들어 낸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의 선택이라면 우선 개별 기업 스스로가 잘하기보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체제부터 구축하는 게 급선무다.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잘하기에 앞서 제대로 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본기부터 갖추자는 리더그룹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제대로 하기’ 목표는 한국건설의 정체성 재정립이다. 과거의 가성비가 가격에 의존했다면 새로운 가성비는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기술력이 최첨단이나 최신, 최고일 필요는 없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면 충분하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보다 기존에 활용 가능한 기술 중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최적으로 조합하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최첨단이나 최고 혹은 최신기술은 범용성보다 활용 범위가 낮다.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과 제대로 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의 조합은 다를 수 있다.

 한국건설을 대표하는 브랜드 혹은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나 기술자도 내세울 수 있는 각자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정체성은 공사 기간이나 가격, 품질과 성능, 만족도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정체성은 제대로 하기에서 점차 잘하기로 옮겨가기 시작할 것으로 판단된다. 제대로 하기보다 잘하기를 먼저 시도하면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초와 기본이 튼튼한 대들보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시간이 걸리고 투자도 필요하지만 이 길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하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누가 해 주길 기대하고 기다릴 시간은 더 이상 없다.

이복남(서울대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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