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표준품셈’ 관리, 민간 再이양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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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25-08-04 09:00본문
황근순 대한건설협회 경기도회장
건설공사의 적정 원가산정은 공공 예산의 효율성과 건설품질 및 안전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 작업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라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를 제도화하고, 현재는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 공사비원가관리센터가 이를 총괄하고 있다. 연간 약 20억 원의 국비가 투입되어 품셈 및 표준시장단가 산정의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현 체계에 대한 불만과 개선의 목소리가 크다.
업계에서는 공공공사는 적자라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고 대형 공공 프로젝트 조차 유찰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계약제도의 불완전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관주도로 행해지고 있는 이 품셈관리 시스템의 신뢰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민간 주도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문제는 운영의 외주화와 특정 업체 집중이다. 건기연은 지난 십 수년간 공사비 산정기준의 핵심 업무를 민간에 외주화해 왔고, 특정 업체가 현장 조사와 분석 용역을 장기간 독점 수행해 왔다. 해당 업체는 소수 인력으로 공사비 산정기준의 핵심 업무라고 할 수 있는 현장조사 및 고도화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영은 특정 업체가 좌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객관성과 투명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운영 절차의 비공개성도 문제다. 건설공사 표준품셈을 마련하기 위한 현장실사 지침 일부는 공개되어 있지만, 실제 산정 기준과 세부 절차, 의견 수렴 과정 등은 외부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업계에서도 산정 과정에 일부 참여하지만 정부 출연기관인 건기연에서 산정 업무를 주도함에 따라 예산 절감, 물가 안정 등 정부의 입김이 반영되는 구조로 볼 수 밖에 없다.
이와 함께 급변하는 현장환경이 반영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건설 현장은 현재 고령화와 외국인 인력 의존이 심각하다. 2024년 기준 건설기능인력 평균 연령은 51.3세이며, 형틀목공과 철근공의 외국인 비중은 각각 44.7%, 40.1%에 달한다. 이로 인해 기능공 투입이 많고 외국인 비중이 높은 골조공사의 공사비 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의 최근 시공한 골조공사의 유로폼과 타일공사는 계약내역 대비 실행금액이 각각 6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품셈에 반영 되어 있는 노동 생산성과 현장의 생산성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주 52시간제, 폭염, 미세먼지 등 노동환경의 변화까지 더해져 현장의 부담은 증대되고 있지만 산정기준은 여전히 과거의 기준선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여러 문제의 해소를 위해 현행 관주도의 공사비 산정기준 체계를 민간 주도 운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공사비 기준을 민간이 주도하는 체계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전기, 통신, 엔지니어링 등 대부분의 공사업종에서 민간 협회나 연구기관이 기준을 수립했고 지금도 그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건설 부문만 2004년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로 국책 연구기관이 다시 주관하게 되었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현실 반영 부족과 불신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제 방향을 전환할 때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민간 기관이 기준 마련을 주도하고 정부는 관리와 승인, 감독 기능을 맡는 이원화 구조가 필요하다. 민간은 변화에 유연하고, 현장의 데이터를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제도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며 책임 있는 조정자로서 기능해야 한다.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산업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공사비 산정기준을 민간의 손으로 돌리고, 정부는 균형 있는 감독자로 전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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