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유찰 사태의 긍정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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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88회 작성일 23-12-13 09:10본문
건설기업 경영의 최대 리스크는 누가 뭐래도 ‘무분별한 수주’라고 생각한다. 낙관과 과욕 속에 야심차게 따낸 대형 프로젝트에서 실행률이 150%쯤 나온다면 회사가 ‘휘청’ 하는 게 당연하다. 대규모 적자로 운영난이 시작되면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풍문이 퍼지고, 그러면 발주처와 협력업체, 금융시장에서 평판이 악화된다.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기 어렵게 되고 자금줄이 말라붙어 진짜 경영위기에 빠진다.
‘무분별한 수주’ 하면 생각나는 기업이 있다. S건설사는 2010년대 초반, 중동 플랜트 사업을 싹쓸이 하다시피 따냈다. 국내외 경쟁사들을 잇달아 제치고 눈부신 수주 성과를 보였지만, 경쟁사들은 저가수주 논란을 제기했다. 실제로 프로젝트마다 실행이 초과되는 사태가 나타났고, 몇 년 뒤에는 조 단위 적자와 자본잠식,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몇 년 새 주가는 반의 반의 반 토막이 났다.
이 회사는 보란듯 살아났다. 올해도 영업이익이 1조원에 육박할 전망이고 향후 비전도 밝아보인다. 기적이랄 수도, 저력이랄 수도 있겠지만 S그룹 계열사가 아니었다면 회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많은 해외건설 전문가들은 당시 이 회사 최고경영자의 과욕과 그로 인한 무분별한 수주를 위기의 원흉으로 기억한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최근 철도건설을 비롯한 공공입찰 현장에서 유찰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데, 안타까운 심정과 함께 다행스럽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오랫동안 공공입찰 시장을 지켜봐온 <대한경제> 기자로서, 심지어 반가운 느낌도 갖는다. 기삿거리 하나 나왔다는 반가움만은 아니다.
GTX(광역급행철도) 같은 공공 프로젝트가 유찰되면 국가 인프라 조성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 발주기관과 민간기업의 행정력 낭비는 말할 것도 없고, 준공기한을 넘어서면 국민 편익과 산업 기반이 크게 훼손된다.
그럼에도 간헐적인 유찰은 입찰시장이 정상을 찾아간다는 신호일 수 있다. 기업들의 수주 심사ㆍ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물가의 이상 급등으로 경험이 쌓인 탓도 물론 있지만, 부적절한 수주가 진짜 위기를 초래한다는 공감대가 자리 잡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한편으로 간헐적인 유찰은 공공기관들이 피같은 국민들의 세금을 아끼려 최대한 고심하거나 심지어 무리한다는 증거일 수 있다. 충분한 수익이 보장되는 입찰만 이어지고, 건설사들이 발주기관 예정가격만 믿고 안심 투찰하는 분위기라면 공공기관이 예산을 퍼주고 있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간헐적’이 아닌 ‘반복적’인 유찰은 공공기관들의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여러 공구에 걸쳐, 그것도 수 차례 재입찰을 거치면서까지 수십여 기업들이 외면한다면, 얼마나 비현실적인 공사비가 반영됐는지 알 만한 일이다.
사실, 그 동안 수십 대 1, 수백 대 1에 달하는 입찰경쟁 탓에 공사비가 다소 부족해 보여도 수주에 도전하는 게 관행이었다. 최근의 유찰 사태가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 입찰시장의 정상화ㆍ합리화를 꾀하는 훌륭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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