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성장 엔진 꺼진 K-건설] 1부 (2) 영업익 2% 허덕…글로벌 혁신 프로젝트에 '한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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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291회 작성일 25-01-07 15:12본문
작년 설계·시공 35건 선정 발표
中 4건...'다롄만 해저터널' 대상
日은 발전 기능 초고층에 도전
韓 내수 울타리 갇혀 '안주 경영'
최고·최장·최초 혁신경쟁서 도태
사업 수익성 저하, 투자가치 '뚝'
10년내 그룹 건설사 '철수' 위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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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만 해저터널에 적용된 튜브 / 사진=CCCC |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20세기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으로 꼽혔던 건설은 이제 한계산업으로 분류되며, 일부 대기업들은 건설사업 부문에서 철수하려는 움직임도 읽힌다. 영업이익률 2∼3%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며 투자 가치가 떨어졌고, 연쇄적으로 성장엔진이 꺼졌다는 비판에 직면한 이유다. 업계에서는 “이러다 10년 안에 그룹사들은 모두 건설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불안한 목소리도 나온다.
혁신이 멈춘 한국건설은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예로 세계적인 건설전문지 ENR이 선정한 ‘2024 글로벌 베스트 프로젝트’ 명단에 ‘Korea(한국)’란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ENR은 2012년부터 매년 각 분야 10명의 전문가로 구성한 글로벌 심사위원단을 통해 베스트 프로젝트를 선정, 시상한다. 작년 12월에는 120개의 출품작 중 19개국, 35개의 프로젝트가 상을 받았다. 선정기준은 설계와 시공 기술을 통해 장애물을 얼마나 혁신적으로 극복했는지 여부다.
한국이 설계ㆍ시공한 프로젝트는 단 한 건도 없는 가운데, 중국 프로젝트는 4건에 달했다. 심지어 ENR은 중국 국영교통건설공사(CCCC)가 설계ㆍ시공한 ‘다롄만 해저터널(길이 5.1㎞)’을 대상 작품으로 선정했다.
다롄만 해저터널은 첨단 굴착공법을 사용한 것을 포함, 순수 중국의 혁신 기술을 선보이며 글로벌 엔지니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 5월에 착공한 후 네 번의 겨울을 거칠 때마다 기온이 영하 21도까지 떨어지는 최악의 조건 속에 공사를 진행했다. CCCC의 수석엔지니어 쑨주(Sun Zhu)는 “중국의 차가운 바다에 노출된 해양 콘크리트 구조물을 전수 조사했고, 이 연구를 바탕으로 100년 수명을 예측한 이론적 모델을 설계한 후 고성능 콘크리트를 자체 개발했다”고 밝혔다.
특히 다롄만의 지질 상황을 감안해 앵커 케이블로 안정화된 선체를 바다에 띄운 후 콘크리트 튜브를 안착시키는 신공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설치한 5개 터널 튜브의 수평도는 오차범위 4㎝ 이내로 들어왔다.
중국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80년대부터 구상했던 다롄과 산둥성 옌타이를 잇는 세계 최장의 해저 터널(약 125㎞) 건설에도 시동을 걸었다. 해기차(해수면 온도와 대기 온도의 차)가 커 여름철에만 공사해야 한다는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세계 건설시장은 지금 기술 각축전이 한창이다. 세계 ‘최고’, ‘최장’, ‘최초’란 수식어가 붙은 건설 프로젝트가 매일 새로 발표되고 있다.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작년 7월 ‘중력축전시스템(GESS)’을 조명했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초고층 건물을 하나의 거대한 ‘배터리’로 쓸 수 있다.
GESS는 사물의 무게를 이용해 에너지를 저장ㆍ방출하는 기술을 말한다. 잉여전력 등으로 무게가 무거운 물체나 물을 들어 올려 위치에너지로 저장하고, 낙하할 때의 에너지로 터빈을 돌려 발전한다. 이 기술을 초고층 빌딩에 응용해보자는 발상이다.
실제로 작년 미국의 건축설계사무소인 SOM은 GESS를 다루는 스위스의 에너지볼트홀딩스와 독점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초고층 건축물 설계로 유명한 SOM이 건물 스스로가 하나의 발전사가 되는 모델을 연구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는 건축주에게 새로운 수익원을 제시함으로써 초고층 설계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 깔려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이 기술을 해저 구조물로 이용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해심 4000m 이상의 깊은 바다가 있는 일본에 도입할 만한 차세대 건설기술로 꼽았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혁신 건설기술에 대한 논의가 잠잠하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일부 설계 효율화와 AI 도입의 움직임은 있지만, 세계 시장을 압도할 만한 국가대표 수준의 기술은 부재하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이다. 새로운 기술을 접목할 때 따라오는 리스크 감당을 피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대형 건설사의 한 임원은 “건설은 경험의 산업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수주를 통해 시행착오를 쌓고, 이 경험이 다음 수주의 밑거름이 되는데 지금은 경영진과 현장 기술자 모두 ‘해왔던 대로 하는 것’에 안주하려 한다”며, “현대차그룹이 105층(높이 569m) 높이 초고층 타워를 반 토막을 내 55층 2개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건 하지 않겠다는 전략인데, 55층짜리 200개를 짓는다 한들 현대건설 및 유관 업계의 기술력 향상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는 “대한민국의 국격은 글로벌 선도자인데, 건설산업은 추격자 지위에 머물고 있다. 내수시장 울타리에 갇혀 있다”며, “건설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바뀌는 세상이 건설을 바꾸고 있는데 아직도 그 흐름을 읽지 못한다. 수주를 기다리기보다 세계 곳곳에서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없다”고 꼬집었다.
최지희 기자 jh606@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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