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잊었던 본능이 드러날 한국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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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651회 작성일 18-01-09 14:35본문
이복남(서울대 산학협력중점교수)
부정적 이미지에 매몰된 정책과 제도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에 맞선 산업계의 집단 목소리로 2017년을 마무리했다. 주택시장 덕분에 웃었던 해였지만 부동산 억제 정책과 SOC 예산 14% 삭감으로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될 2018년 시장이 먹구름으로 덮였다. 예산을 증액해 달라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인프라 노후화 및 지진 피해 복구와 내진보강 요구를 앞세우기 시작했다. 금년 한해 한국건설을 예상해 본다.
내수 시장은 공공 및 민간 모두 침체기로 반전될 것이다. 곳간에 쌓아뒀던 양식은 줄기 시작했는데 채워 넣어야 할 수확물량도 거의 바닥이다. 민간투자 시장도 불확실한 정책과 제도, 신뢰성 상실로 기대하기 어렵다. 경주ㆍ포항 지진으로 노후 구조물 보강 시장이 새롭게 부상하겠지만 재정 여력 소진과 민간자본이 유입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해외시장은 기업에 그림 속 떡이다. 투자개발형 혹은 시공금융자금을 요구하는 시장으로 급속하게 옮겨갔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 시장에서도 한국은 변방 신세다. 해외시장 확대 정책도 당분간 시행될 기미가 안 보인다. 산업 진흥이나 시장 부흥 정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내수와 해외시장 모두 고립무원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다.
정책과 제도는 글로벌 컨설팅기관의 보고서에 담긴 산업구조 개편과 생산성 향상, 그리고 안전관리 강화에 역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주체별 업역과 역할분담 재편, 거래구조 단순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산업체는 기업 고유 목적보다 사회적 역할을 강요받고 기술자의 일자리 불안이 심화되는 이슈가 부각될 것 같다. 기능 인력을 약자로만 인식하는 제도는 기대만큼 당사자에게 보상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보상액을 풀어줄 곳간은 바닥났고 당장 가능한 일감이나 일자리가 증가될 기미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기술력을 잃어버린 자격증 전성시대가 열렸다지만 산업체는 기술력을 상실했다. 건설엔지니어링 기술은 1995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반건설업체는 하도급관리자 역할로 전락했다. 전문공사업체는 자체 인력보다 외부 인력을 사업장별로 충원한다. 현장을 기피하는 내국인과 인건비 절감 이유를 내세우는 산업체가 외국인력 유입을 촉발시켰다. 제4차 산업혁명, ICT, IoT, VR, AR, 드론 등에 묻혀 전통적인 기술이 무시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전통적인 기술력마저 잃어버린 상황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인재 무기를 찾는 산업체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자격증을 가진 기술자가 스스로를 만점자라 주장하지만 산업체는 외면한다. 자격증이 필요한 기술 기반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용자는 알고 있다. 인재 양성을 통해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력을 확보하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장기간에 걸쳐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 투자여력과 여유인력 부족 이유만 내세운다. 산업체의 이런 목소리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란 예상이다. 산업체는 개별이 아닌 정부와 협회, 단체가 나서 달라는 주문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건설기술자에게 요구하는 역량은 전통적인 기술이 아니다. 시장 소화가 아닌 시장과 상품을 구상하고 사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S/W 역량을 요구한다. 대학이나 재교육기관에는 이런 수요를 맞춰 줄 수 있는 교육ㆍ훈련 포트폴리오가 없다.
기술자 수급 이슈가 부각되겠지만 내용은 20년 전과 완전히 다른 형태다. 1995년에는 건설기술자의 양적 부족 문제가 핵심이었다. 2018년 기술자 수급 이슈는 질(質)이 양(量)을 압도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시장이 찾고 있는 글로벌 인재 절대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리라 예상한다. 시장 물량에 의존했던 인력 수요 추정방식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 이를 대체할 수요 추정이나 예측 모델도 없다. ICT와 제4차 산업혁명 등 외적 요인에 기대어 일자리 대체 추세에 동승했던 거대 담론도 효력을 상실해버렸다.
재정 투자와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에 대한 기대도 어렵다. 예고된 대규모 국책사업도 극소수인 데다 가시화도 예측하기 어렵다. 해외시장은 전통적인 도급과 인재난 등으로 성장이 불투명하다. 건설에 출구가 없다는 현실이 오히려 업체의 숨겨진 본능을 자극하게 된다. 스스로 일어 설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에 도달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게 만드는 산업체와 기술자의 집단 분위기를 조성하는 큰 움직임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나서자는 공감대 형성이다. 광장의 촛불이 아닌 국내와 해외 곳곳에서 횃불을 밝히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시장이 생존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만들어 가는 세상으로 바꾸자는 운동이 전개될 것이란 예상이다. 과거 30년 동안 잊었던 한국 건설 본능이 막다른 골목에서 방향을 틀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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