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외건설현장, 근로시간 단축 유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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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653회 작성일 18-05-09 11:24본문
52시간 근무제가 해외건설업계의 화두다. 국회는 지난 2월 말 주당 근무시간을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300인 이상 기업 및 공공기관은 오는 7월1일부터 이 법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안착이 쉽지 않은 모습이다. 일부 기업은 주 52시간 근무가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조사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충격 완화를 위한 산·학·연 TF를 구성, 가동하고 있다. 해외건설업계 역시 해외현장의 특수성을 이유로 예외업종 지정 또는 일정 기간 적용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줄이면서도 생산성을 높이는 선진국형 근로 방식을 도입한다는 시대적 흐름과 취지는 공감하고 환영한다. 그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연간 근로시간이 세 번째로 많은 국가로 꼽혀 왔다.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직장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모색하고, 근로자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단축된 근로시간만큼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도 있을 터이니 법 개정의 근본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하리라 본다.
다만, 개정된 법률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안착되자면 최소한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특히 해외건설 분야가 그러하다. 해외건설 산업은 사업장이 국외에 있는 데다, 대부분 현장이 사막이나 밀림 등의 오지에 위치해 있어 어느 산업보다도 ‘돌발변수’가 많다. 급격한 기온 변화와 악천후 등의 어려운 자연 여건 외에도 이질적인 문화에의 적응 문제도 있고 또한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작업 지연도 빈번하다. 이에 따른 ‘공기 지연’과 ‘지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리스크가 상존한다. 따라서 해외공사 현장에서는 유독 ‘돌관작업’이 많다. 이 밖에 건설공사의 특성으로 인해 공정상 피크 시점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해외 공사의 경우, 대다수 기업은 주당 60시간을 기준으로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들은 개정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20% 이상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소규모 현장의 경우 인력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높은 국내 인력의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해외현장에는 지속적으로 외국 인력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인력 근로시간이 단축된다면 비용절감 압박은 가중될 것이며, 현장 인력의 외국인으로의 대체 추세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특히 일정 기간 이상의 경력이 요구되는 관리 및 기술직은 단기간 내에 국내 인력으로 대체되기 어렵다는 문제도 감안해야 한다.
한편, J/V 또는 컨소시엄으로 수주한 경우, 다국적 기업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공동으로 수주한 프로젝트 현장에 함께 근무하는 상황에서 우리 인력만 국내법을 이유로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면 사업 관리의 효율성이 저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며, 그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 기업이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해외건설은 국내와는 달리 다양한 국적의 인력 및 기업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발주처가 국내 기관이라면 제도 변경으로 인한 공기 연장이나 비용 증가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건설은 발주처가 외국의 정부, 공기업 또는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국내법 개정을 사유로 비용 증가 또는 공기 연장에 따른 지체상금의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
해외건설 시장은 나날이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단순 토건공사의 경우 이미 우리 기업들은 중국, 인도, 터키 등 개도국 건설기업에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2014년 시작된 저유가로 인해 발주물량이 줄어들면서 지난 3년간 수주 금액도 전성기 대비 절반 이하로 감소한바 있다. 이에 정부도 수주 경쟁력 회복을 위해 정보와 금융, 외교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으며 기업들도 재도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준비 기간 없이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면 우리 해외건설업체에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되며 이는 결국 법 개정의 취지와는 상반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은 더욱 보수적인 영업활동을 하게 될 것이고, 또한 우리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저하는 수주 감소로 이어져 결국 고용 위축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의 근본 취지가 달성되고 안착되도록 노·사·정은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해외건설업체는 최소한의 준비 기간만 부여된다면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주 52시간 근무제가 부작용 없이 안착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를 위해 법 개정 전 계약이 체결된 해외건설 공사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또는 3~5년간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 등에 대해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해외건설 현장의 기후 조건, 지리 환경 등을 감안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는 것도 검토되기를 기대한다.
송영완 해외건설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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