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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건설사 옥죄는 발주기관 '공사비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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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90회 작성일 13-05-2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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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하나 잘못하면 회사 문닫을 판

  # 경남 거창 소재의 중소업체인 A사는 지난해 6월 한 지자체에서 발주한 어린이집 신축공사(도급액 3억2100만원)를 낙찰받았다. 불경기에 공사를 수주했다는 기쁨은 잠시. 실행을 뽑아보니 이윤을 빼고도 120%를 훌쩍 넘었다. 표준품셈에 의한 설계대로라면 해당 공사의 도급액은 5억9800만원이 나와야 했다. A사는 결국 부정당업체 제재를 받을 각오를 하고 공사를 포기했다. A사 관계자는 “적자를 감수하느니 차라리 회사 문을 닫는 편이 낫다”고 털어놨다.

 # 지난해 개통한 인천의 한 교량. 턴키(설계시공일괄입찰)로 시행된 공사에서 지역업체 B사는 공동 도급사로 참여했다. B사는 완공 후 대표사가 보낸 내용증명을 보고 경악했다. 공사비가 예산의 2배 가까이 오버돼 지분율에 따라 적자 분담금을 요구한 것이다. B사는 법정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버텼지만 대표사의 가압류 조치에 손을 들고 몇 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기로 합의했다.

 적자 수주로 인한 건설사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대형사는 대형사대로, 중견ㆍ중소사들은 그들대로 허리가 휠 지경이다.

 갑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지자체들의 과도한 공사비 삭감은 중소건설업체의 목을 조른다. 적정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역서 검토가 힘든 중소업체의 현실을 교묘히 이용해 일단 발주하고 보는 식이다. 업체 입장에선 일정의 낙찰률이 보장된 적격공사라고 해서 덥썩 물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충남 금산군은 기초금액 112억원의 금산인삼약초건강관 조성공사를 자체 발주하면서 제경비율을 줄여 전체 공사비의 13.4%를 삭감해 지역 건설업계의 빈축을 샀다. 지방계약법령은 일반관리비의 경우 5.5%, 이윤은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처럼 일부 지자체들은 예산 절감과 부족 등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제경비율을 줄여 공사원가를 삭감하고 있는 것이다.

 A사의 경우 공사를 포기했지만 대부분 적자 실행이라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 계약보증금의 5%를 날려야 하고 계약 포기에 따른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공사내역서를 확인하지 못한 업체에 1차적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하루에 전국에 걸쳐 몇십건이 쏟아지는 적격공사의 내역서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 내역서를 확인하라는 것은 수주를 포기하라는 뜻과 같다”면서, “그렇다고 공공기관이 중소업체의 어려움을 예산 절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지자체에 만연한 공사비 삭감 관행은 다른 공공기관에도 ‘전염’되고 있다. 얼마전 서울 지역의 종합건설업체 J사는 최근 도급비 33억원짜리 모 부대 군시설 현대화 공사를 낙찰받은 뒤 설계내역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J사 관계자는 “조달청 기준을 적용한 것과 비교해 보니 설계원가에서 18%나 빠지더라”면서, “공사실행을 뽑아보니 110%를 넘었다. 공사수행으로 수익을 내기는커녕 10% 이상의 적자를 감당해야 할 처지”라고 성토했다.

 대형 공사들도 마찬가지다. 300억원 이상 최저가 공사의 실행률은 이미 마이너스가 된지 오래다. 적자 실행으로 견적을 뽑은 후 공사를 수행하면서 본전을 맞춰나가는 게 일상이 돼 버렸다. 중견사 T사 견적팀장은 “지난해 최저가 토목공사 38건 입찰을 봤는데 평균 실행률이 105%로 나왔다. 더욱 기가 찬 것은 단 한건도 수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턴키공사도 역시 최저가에 비해 낙찰률이 높아 실행이 좋다는 말은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대한건설협회 조사에 따르면 16개 보 가운데 15개 현장의 평균실행률은 계약금액의 106% 수준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건설산업이 수주산업이다 보니 적자실행이라도 수주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실행이 좋은 공사만 선별해 입찰을 보는 것도 한두 번이다. 실행이 좋은 공사를 수주한다는 보장도 없다. 회사의 경영과 자금 회전을 위해선 적자공사라도 수주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흡사 카드 돌려막기와 다름 없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그나마 규모가 큰 회사는 버틸 수 있겠지만 3등급 이하의 업체의 경우에는 현장에서 단기간에 몇십억원이 깨지면 부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타격을 입기 마련”이라고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동도급의 신뢰도 깨지고 있는 상황이다. B사의 사례처럼 적자실행에 따른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과거 실행이 좋을 때는 적자 공사라 하더라도 대표사가 적자분을 안고 갔지만, 최근 들어서는 공사 지분대로 책임을 나눈다. 다른 중소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대형사가 추진하는 공사에 공동도급사로 들어가는 게 바로 영업이고 수익도 좋았지만, 이제는 대형사의 부름을 종종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형사들도 나름대로의 고충은 있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공사 도중 공동도급사가 자빠지면 이에 따른 책임은 고스란히 대표사의 몫이 된다. 이렇게 쌓인 미수채권만 수천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결국 적자실행이 건설사뿐 아니라 건설산업 전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모습이다.

정회훈기자 ho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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