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Focus

[물가변동 배제특약 무효] 법조계 “공사비 증액 청구 길 열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41회 작성일 24-06-14 10:32

본문

비슷한 분쟁에 영향 줄지 촉각

“공사대금 조정 무조건 불가능하다”
발주자 주장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특약 효력’ 놓고 법적 분쟁 확대


일부선 “사건마다 개별적 판단 필요
섣부른 기대 되레 毒 될 수 있어”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 문제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자 법조계 안팎에서는 앞으로 비슷한 공사비 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202406131359569390670-2-505012.jpg
사진: 대한경제 DB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부산의 A교회가 “선급금을 돌려달라”며 B건설사 등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한 2심 판결을 최근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에서 헌법이나 법률, 대법원 판례 위반이나 중대한 법령 위반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하지 않으면 대법원이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판결로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A교회와 B사는 2020년 8월 건물 증축공사를 착공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는 ‘계약체결 후 물가 상승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할 수 없다’는 특약이 포함됐다.

문제는 발주자인 교회 측의 요청으로 착공이 8개월 이상 늦춰지는 동안 철근 가격이 2배가량 올랐다는 점이었다. A교회는 B사에 계약이행보증서와 선급금보증서의 연장발급을 요구했지만, B사가 계약금액 증액을 요청하자 계약 해제와 함께 선급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교회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계약서에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B사 역시 착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사정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특약에 동의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교회 측에 계약금액 증액 요청을 받아줄 의무가 없다는 이유였다.


반면 2심을 맡은 부산고법은 “B사가 철근 가격 상승을 반영한 도급금액 조정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며 1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우선 2심은 일정한 경우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무효로 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규정이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적용되는 ‘강행규정’이라고 봤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 1호는 공사 계약 체결 이후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않거나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면 불공정 계약이므로 해당 부분은 무효라고 규정한다.

특히 2심은 “수급인인 B사의 귀책사유 없이 원고 측 사정으로 착공이 연기됐는데도 원자재 가격의 대폭적인 인상을 도급금액에 전혀 반영할 수 없다면, 이 같은 도급계약 내용은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않아 수급인인 B사에 현저히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바른의 우현수 변호사는 “공사도급계약에 첨부된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에 공사대금을 조정하는 일반규정이 있었다는 점에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전면적으로 무효로 본 것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일반규정에 우선하는 특약사항을 무효로 판단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 때문에 공사대금 조정이 무조건 불가능하다’는 발주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특약의 효력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또한 법조계는 최근 정부가 이례적인 물가 상승을 감안해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이 제한돼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앞서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를 개정해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방식을 구체화했고, 기획재정부도 국토부에 이어 ‘물가변동 배제 특약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우 변호사는 “향후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을 적용해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적극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그는 “시공사나 발주자 모두 공사계약을 체결할 때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규정하더라도 공사대금 조정이 제한되는 물가변동의 세부적인 폭을 설정하거나 물가변동을 야기하는 사정, 물가변동을 계산하는 기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등 관련 조항을 정교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대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직접 구체적인 판단을 내놓은 것은 아닌 만큼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어떤 경우에나 무효라고 보긴 어렵고, 결국 개별적ㆍ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소송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문에는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법 제4조에 해당해 이유가 없다고 인정되므로 같은 법 제5조에 입각해 상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문구만 짧게 적혀 있을 뿐, 구체적인 상고 기각 이유는 들어가지 않는다.

지방법원의 C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의 결론을 모든 공사비 분쟁에 일반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며 “결국 사건마다 구체적ㆍ개별적인 판단이 필요한 만큼, 섣부른 기대는 오히려 나중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대한경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