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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제 건설분쟁은 ‘계약서’에서 시작…컨소시엄 내부 갈등도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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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556회 작성일 19-02-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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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운앤바줄(Oon&Bazul) 싱가포르 로펌 파트너 변호사

국제 ‘중재’ㆍ해외 리스크 관리 ‘베테랑’

韓건설사 대부분 계약서 중요성 간과

수주실적 채우기 급급 독소조항 놓쳐

발주처 클레임 기간 짧게 설정 대표적

구두합의는 신뢰 떨어져, 문서가 ‘중요’

최근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 ‘상징적’ 장소인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신남방정책의 주요국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역적ㆍ문화적으로 동남아를 잇는 중요 거점지다. 물류ㆍ무역ㆍ금융허브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을 넘어서 최근에는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리갈(Legal) 허브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동남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국제 중재 및 조정 사건들이 싱가포르로 집결되고 있다. 동남아에서 발생하는 중재 사건의 80∼90%는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로 모인다. 그 중 국제건설 분쟁은 전체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신남방정책으로 한국 업체가 동남아에 대거 진출하면서, 관련 분쟁 사건 역시 대폭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로펌은 국제중재 및 조정 전문가인 유지연 변호사를 지난해 12월 채용했다. 현재 운앤바줄(Oon&Bazul) 로펌에서 코리아 프랙티스팀을 이끌며 국제중재 및 조정, 국제소송, 해외 리스크 관리 업무 등을 맡고 있다.

유 변호사는 SIAC에서 130여건 이상의 다양한 국제 중재사건을 진행해왔으며, 국제분쟁과 국제건설 분쟁 해결 등에 강점을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관리(EPM) 과정을 통해 국제 건설 클레임 및 중재에 대해 강의하고, 일본 큐슈대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기도 하다.

◇ 모든 국제건설 분쟁의 시작은 계약서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계약서’다. 계약서에 모든 사항이 다 담겨 있지만, 정과 관습에 기반한 우리나라 업체들은 계약서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일부 업체는 인터넷 번역기로 계약서를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유 변호사는 “엔지니어분들이 영문 계약서를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메일 문구와 뉘앙스 하나로도 해석의 여지가 많다”며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계약서다. 모든 분쟁은 계약서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계약서에 담긴 ‘독소조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공사계약을 체결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른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은 클레임 노티스 기간이다. 발주처는 수주 업체들이 클레임을 걸기 어렵도록 클레임 노티스 기간을 짧게 설정하곤 한다.

유 변호사는 “연말이 되면 건설사들은 수주 실적을 채우기 위해 독소조항이 담긴 건설계약도 무심코 체결한다. 그러나 클레임 노티스 기간이 짧으면 공사 중 발생한 문제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기 매우 어렵게 된다”며 “공사 후 대금 청구를 어렵게 하는 독소조항도 계약서에 여럿 담는데, 이를 파악하지 못한 채 건설계약을 체결하면 대금 청구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서류와 문서 파일을 미리 만들어둬야 한다. 우리나라는 구두로만 계약 내용을 나누고 문서화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모든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둬야 분쟁 상황에 처할 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끌어갈 수 있다.

유 변호사는 “국제 건설 분쟁이 생겼을 때 SOP법(Security of Payment)에 따른 재결로 해결하든 중재로 가든, 법이라는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면 증거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구두로 나눈 내용은 신뢰가 떨어진다”며 “반드시 증거로 백업이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 업체들은 아직 그 부분에 숙련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법률자문ㆍ서비스…비용 아닌 예방 차원에서 필요

해외 건설사는 데일리 변호사를 고용해 건설 현장마다 변호사를 대동한다. 변호사는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레터와 계약서 문구 등을 수시로 체크한다.

반면 국내 건설사는 법률 자문 서비스를 비용으로 인식해 데일리 변호사 고용을 꺼리는 편이다. 당장 분쟁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호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에서다. 변호사가 현장의 레터를 직접 관리하고 프로세스를 인식하고 있을 경우에는 분쟁과 중재 사건 등이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 오히려 그만큼 법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유 변호사는 “이미 분쟁이 벌어진 뒤에 법률자문을 요청하면 변호사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 변호사의 조언은 조기에 필요하다”며 “한국 업체들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 막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변호사를 고용해 돈을 많이 들이더라도,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 단순 EPC서 투자개발형 사업으로…“컨소시엄 내부 분쟁 관리해야”

지난 5년간 SIAC에서 일하면서 자주 접한 분쟁 사건은 국내 건설사의 EPC(설계ㆍ조달ㆍ시공) 계약이다. 지난 2012년부터 국내 건설사는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EPC 공사 수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에 따른 대금 청구 관련 분쟁 후유증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해외 프로젝트 원가율 상승에도 기여했다.

유 변호사는 “당시 국내 건설사의 수주 실적은 대폭 늘어났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손실을 보게됐다. 이는 법적 대응의 중요성을 깨달은 일종의 수업료”라며 “이 덕분에 최근에는 계약서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건설사가 늘어나고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그간 국내 업체들의 국제건설 분쟁 대부분은 EPC 공사계약이 차지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투자개발형 프로젝트나 시공자 금융주선형 프로젝트가 늘어나는 만큼 관련 분쟁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발주처와의 분쟁이 주류를 이룬 것과는 달리, 향후에는 컨소시엄 내부 법적 책임공방이 두드러질 것으로 관측된다. EPC 이후 운영 및 관리(O&M)까지 하는 케이스가 확대됨에 따라 지적재산권 관련 분쟁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 변호사는 “SIAC에서 일할 당시 일본의 투자개발형 프로젝트 관련 분쟁을 자주 다루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 건설 분쟁도 진화하고 있다”며 “투자개발형 사업은 컨소시엄 내부 책임 문제로 귀결된다. 조인트 벤처로서 나눠진 역할 분담과 불명확하게 적시된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는 과정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동남아 발전 무궁무진…“한국 콘텐츠 담은 K-건설 한류 기대”

유 변호사는 한국 건설사들이 동남아에 진출할 때 큰 힘을 보태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싱가포르를 포함한 베트남ㆍ필리핀 등은 최근 중요한 해외 수주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 변호사는 “코리아 프랙티스 팀을 키워서 동남아를 넘어 인도와 중동까지 커버할 수 있는 거점 헤드쿼터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하고 싶다”며 “해외에서 일하고 싶은 한국의 청년 변호사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유 변호사는 앞으로 동남아 시장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건설사가 수익 창출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교육과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인식 및 이미지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 변호사는 “방탄소년단과 같은 한류가 건설 부문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며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 등 상징적인 건물을 건설할 만큼 국내 건설사의 역량은 이미 충분하다. 한국 고유의 전통과 멋을 담은 건설을 지향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건설경제> 홍샛별기자 byul0104@  사진 안윤수기자 ays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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