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조달청 논란’서 짚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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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665회 작성일 19-06-21 09:52본문
조달청이 뭇매를 맞고 있다. 이는 조달청이 실시설계 기술제안 예정가격 초과 입찰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한국은행 통합별관 건축공사’ 등 관련 입찰 3건을 일괄 취소한 데서 시작됐다.
한국은행은 조달청의 조달행정으로 분쟁이 발생하는 바람에 시공사 선정이 늦어지고, 입찰 취소까지 이뤄지면서 공사가 장기간 지연될 수밖에 없는 것이 불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사무실 추가 임대료만 수백억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는 말도 들린다.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들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며 줄소송을 냈다.
모든 것이 감사원이 지적한 대로 조달청의 잘못된 행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치고 있지만, 따져 볼 측면도 있다.일단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예정가격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예정가격은 곧 낙찰자 선정 기준이 되는데 예정가격을 초과한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했고, 이로 인해 예정가격 초과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 사이에서 발생한 가격 차이가 예산 낭비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하지만, 실시설계 기술제안의 도입 취지를 강조하는 쪽의 논리를 들어보면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꼭 진리만은 아니다. 고난도 공사에서 애초 설계안보다 나은 시설물을 만들어 내고자 도입한 실시설계 기술제안 입찰은 총예산이라는 상한선을 두고 있는데도 총예산에 미치지 못하는 예정가격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적극행정’과 ‘과실행정’이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조달청이 예정가격 초과 입찰을 허용한 것은 제도 도입 취지를 고려해 ‘적극행정’을 펼쳤다는 시각이다. 감사원은 조달청이 기재부 유권해석을 받아야 하는 중요 절차를 빠뜨렸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한국은행이 기재부에 예정가격 초과 입찰이 적절한 행정이냐는 질의를 했고, 기재부가 ‘실시설계 기술제안 입찰의 경우 예정가격을 초과해 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고 답변한 것을 감안하면, 조달청이 별도로 유권해석을 할 필요를 찾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황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국, 이번 실시설계 기술제안의 예정가격 초과 입찰 논란은 조달청의 ‘과실행정’이라기보다 행정을 둘러싼 가치관의 충돌 문제로 봐야 한다.
하나는 총 예산 범위 내에서 더 나은 시설물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건설산업 기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측면이다. 또 하나는 예산 절약을 더 우위에 두기 위해 총 예산 범위 내에서 설정된 예정가격 이하 낙찰만을 허용한다는 측면이다.
바꿔 말하면 수준 높은 공공시설물 공급과 건설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예산 절감에 초점을 맞출 것이냐는 문제다.
이번 조달청 행정 논란은 이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를 두고 평가를 내려야 한다. 이는 한국은행의 새 건물 입주가 늦어지고, 어느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되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입찰 제도는 그 나라 산업의 거울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건설산업의 미래가 달린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설경제> 한상준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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