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적정 공사비를 위한 나머지 80%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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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661회 작성일 21-04-12 08:57본문
공공 발주기관의 건축· 토목직 기술자 교육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교육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본인이 관리하는 건설공사에서 건설사가 수익을 많이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그때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며 교육생들의 얼굴에서 복잡한 감정선이 읽혔다. 교육생들의 열띤 토론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던진 ‘고약한’ 질문이었다.
전반적인 의견은 발주자가 요구한 수행성과와 결과물만 나온다면 건설사의 수익 창출에 대해 기분 나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적정 공사비의 지급도 필요하다는 열린 마음의 대답도 있었다. 발주자 만족이라는 전제조건이 있기는 했지만 적정 공사비를 중요한 이슈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최근 조달청을 중심으로 공공 건설공사의 적정 공사비 확보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적정 공사비와 관련된 연구와 자문에 참여했던 과거 경험을 뒤돌아보면 그간 적정 공사비 논의에서 조달청은 주로 ‘수비수’의 역할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격수’의 역할을 자처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 같아 응원의 마음과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필자는 적정 공사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많고 적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결과적인’ 적정 공사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에게 현재 본인의 연봉이 적정하냐고 질문한다면, 선뜻 동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의 능력만큼 충분히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며,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어떤 공공 건설공사의 공사비 100억원을 두고 적정하냐고 건설사에게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일단은 따져 봐야 되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며, 경영능력, 사업수행능력 등 기업의 ‘씀씀이’에 따라 적정하게 또는 부족하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고 적음이라는 관점에서 ‘결과적’ 적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관건은 ‘과정적’ 적정이다. 즉, 건설공사비의 산정, 결정, 인정, 지급 등이 이루어지는 환경, 조건, 과정 등이 적정한지가 공사비 적정성 확보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현재 조달청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 방안을 살펴보면 과정상의 적정성 확보라는 맥락이 읽히며 분명히 의미 있는 접근이지만 적정 공사비 확보라는 큰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한 1/5(20%)의 노력이다. 조달청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관련 부처의 나머지 4/5(80%)의 노력이 함께 보태져야 적정 공사비 확보라는 온전한 그림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공 건설공사비는 다섯 번 정도 ‘삭감’되며 이로 인해 적정 공사비의 확보가 어렵다고 한다. 첫 번째 삭감은 해당 건설공사의 양적․질적 규모와 매칭되지 않는 예산의 과소 책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두 번째 삭감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각종 공사비 산정 기준이 원인이 된다. 세 번째는 입낙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낙찰률을 통한 삭감이며, 네 번째는 발주자의 불공정 관행에 의해 미지급되는 공사비를 통한 삭감이다. 마지막은 건설공사비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발주자가 설계변경 금액 등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어려우니 일단은 안전하고 보수적인 지급을 선택하면서 발생하는 삭감이다.
공공 건설공사비의 적정성 확보를 어렵게 하는 다섯 가지 삭감 원인 중 두 번째가 현재 조달청이 개선을 추진하는 부분이며 그래서 20%의 노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사실 나머지 80%의 노력과 관련된 현안을 짚어보면 하나도 만만하게 없다. 정치적․정책적 어젠다와 연관되어 있고, 낙찰률 말고는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나 절감에 대해 대중적으로 설명할만한 지표도 마땅치 않으며, 불공정 관행의 해소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건설공사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QS 같은 전문 직종이 국내에서는 미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안들을 극복하는 것이 적정 공사비 확보를 위한 나머지 80% 노력의 방향성이다. 적정은 공정의 이슈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적정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많고 적음이라는 잣대로 공사비의 적정성 문제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건설공사비를 산정, 결정, 인정, 지급하는 과정이 공정하고 적정한지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정 공사비가 분명히 한 방향 이슈는 아니다. 발주자 만족을 전제로 할 때 건설사의 수익 창출이 불쾌하지 않다는 발주자의 목소리도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달청의 20% 노력이 시작된 김에 정부 관련 부처의 나머지 80% 노력이 보태져서 적정 공사비 확보가 진일보 하기를 기대한다.
김한수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대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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