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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필연론과 산업 필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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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산업관계연구소 댓글 0건 조회 1,366회 작성일 10-01-1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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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 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설계시공일괄입찰(턴키)방식 개선안 중 하나로 이원화된 심의·평가위원회가 하나로 통합되고 건별 평가위원을 20일 전에 공개하는 방식이 새롭게 도입된다. 평가위원 사전 공개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현가능성 및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건설업계는 로비 필연론을 주장한다. 전 직원의 영업맨화(?)를 내세운 기업에서 수주산업 특성상 어떻게 로비 없이 영업을 하냐는 반문이다. 그런가하면 평가위원 후보 대상그룹에서는 평가위원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사전에 마련할 것을 요구할 정도로 ‘턴키=로비=필연’이라는 3등식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로비는 공개된 것과 공개되지 않은 게 있다. 공개된 로비는 미국과 같이 법으로 보장하는 정치성 로비다. 국내에서는 로비를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공공공사에서 로비는 불법이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금전이 개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로비 필연론은 개인 혹은 개별기업에서 주장은 할 수 있지만 산업 차원에서 보면 엄연한 불법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음성화된 로비는 결과적으로 산업 전체에 피해를 준다. 다시 말해 로비 필연론이 산업 차원에서는 필패론으로 바뀔 것이다. 턴키공사는 원가 거품론과 높은 낙찰률로 인해 국고를 낭비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주장은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때문에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건설업을 꼬집기에 가장 좋은 단골 메뉴가 됐다. 당연히 건설산업 전체 이미지 훼손뿐 아니라 극단적으로 턴키 폐지론의 원인이 됐다.

로비가 가능한 이유는 예측 가능한 결과 때문이다. 턴키심의에서 결과를 예측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심의항목과 변별력이다. 국내 공공공사에서 로비가 먹히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심의 항목, 항목별 평가기준과 방식, 평가위원들의 역량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 탓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해외건설공사 턴키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되는 기간 및 과정을 봐도 국내 턴키심의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필자의 경험과 지식에 비춰볼 때 국내의 턴키심의 항목과 평가대상 및 기준이 너무 단순하다는 데 일차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어떻게 예정가격이 1000억원을 넘는 제안서를 하루 이틀 만에 평가할 수 있는지 놀랍다. 턴키공사 중 원가 구성이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설계가 평가 비중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시공업체 선정을 좌우할 수 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설계력=기술력’이라면 시공기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상식에 불과한 것인지 묻고 싶다. 턴키방식의 최대 장점이 설계·시공의 간섭관리로 시공단계의 설계변경 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평가대상에는 제외되어 있다. 공기단축 혹은 공기지연을 방지할 최대의 장점이 정작 평가대상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이다.

사업책임자 혹은 핵심기술 투입 예정인 기술책임자의 경험과 성과, 그리고 지식과 역량 등이 매우 중요한데도 너무 가볍게 넘어가고 있다. 건설기술 및 관리 전문성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다.

오래 전 필자는 원자력발전소 종합설계용역업체 선정을 위한 평가위원으로 5개월간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핵심은 원전설계에 참여할 전문부문별 책임자 역량, 계약변경 가능성, 기술이전 가능성 등 다양한 평가요소들로 구성됐다.

물론 평가위원은 입찰안내서 발송 당시에 이미 공개됐다. 국제입찰이라는 특성은 있었지만 입찰업체 7개 중 3개 업체를 1차 선정 후 4개월간 평가위원의 합동회의, 평가의견 조정, 후보군과 공개협의 등을 거쳐 계약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이 평가 결과 발표 후 모든 입찰자에게 공개됐다. 일부 탈락업체가 문제를 제기했지만 평가위원회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100% 수용했다.

필자는 ‘지난 98년 한 지자체에서 실시한 턴키심의에 참여한 이후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입찰업체들의 제출 서류가 사과상자로 2개씩이나 되는데도 평가시간은 6시간 밖에 주지 않아 도면이나 공법 등을 제대로 확인하기 전에 평가장을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라면 당연히 로비가 먹혀들 수밖에 없다는 직감 때문에 지금까지 참여를 피하고 있다.

일부에서 발주자 중심의 평가위원 구성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발주자 스스로가 역량이 갖춰질 때까지 턴키발주를 자제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리고 발주자가 중심이 돼야 하는 이유는 10일 이상 소요되는 심층 분석 및 평가를 전담할 만한 외부전문가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성일 : 2010-01-10 오후 6: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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