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값 오른다 외치던 언론들, 이젠 "건설사 살려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경희대학교산업관계연구소 댓글 0건 조회 1,336회 작성일 10-03-12 16:13본문
- 부동산 광고에 목맨 신문들의 추대.... 건설업계 부양책보다 구조조정 요구해야 -
최근 건설 및 부동산 관련 기사들을 읽다 보면 매우 당혹스럽다. 몇 달 전까지 언론들이 쏟아내던 기사들과는 기사의 톤이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다수 언론들, 특히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신문들은 '대세상승'이니 '폭등'이니 하는 단어들을 연일 쏟아냈다. 이것이 부동산 시장의 정확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면 모르지만, 사실 침소봉대에 가까운 선동이었다. 주택시장 침체로 부동산 광고에 굶주린 신문들의 사정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선동의 정도는 매우 심했다.
이들 언론들은 전국과 수도권에 미분양 물량이 잔뜩 쌓여 있는데 더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신규 분양 물량과 입주 물량이 대규모로 쏟아질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폭등할 것이라고 선동했다. 오히려 분양물량이 쏟아져도 '프리미엄이 기대되는 대단지 분양이 많다'는 식으로 판촉성 기사를 쏟아내기 바빴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전세가가 뛰자 곧바로 '전세 사느니 집 산다'는 식으로 매매가 상승으로 연결지었고, 마구 부풀린 '토지보상금 40조원'을 들먹이며 집값이 폭등할 것처럼 선동했다. 강남 재건축 단지 위주의 집값 급등 현상을 수도권 전반의 현상인 양 과장하기 바빴고, 호가를 실제 거래가인 양 호도하기 바빴다.
이들 언론은 역시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매는 부동산 정보업체들의 확성기 노릇도 톡톡히 했다. 이들 '부동산 투기 선동 전문가'들을 동원해 '집값이 바닥쳤다' '대세상승으로 간다' '공급 부족으로 2~3년후 집값이 폭등한다'는 등 당장 집을 사지 않으면 바보가 될 것처럼 떠벌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집값 상승이 올해에도 계속 될 것이라며 꽹과리를 쳐대던 이들이 대다수였다.
대한건설협회 부설 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이나 주택건설협회 부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 처럼 건설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구소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건산연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10년 부동산 시장 전망에서 전국적으로 4% 상승한다며 선동에 나섰다. 한국경제신문 등 일부 신문을 제외하고는 무비판적으로 이런 전망을 그대로 보도했다.
이 같은 언론의 선동성 보도는 부동산 분양 광고 의존도가 높은 조중동과 매일경제, 아시아경제, 파이낸셜뉴스 등 경제신문들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같은 이른바 진보매체나 지상파TV 등도 크게 차별화된 보도를 한 것도 아니었다. 특히 신문의 경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체의 색깔과 상관없이 아파트 판촉성 기사가 적지 않았다.
"건설사 살려라"... 몇달 새 얼굴 바꾼 언론사들
그런데 불과 몇 개월만에 언론들의 보도 태도는 확 바뀌었다. 최근 며칠 사이에 언론에 보도된 기사 제목들만 봐도 그렇다.
'날개 잃은 분당... 급매 최고 1억원 하락' '부동산 시장 돌파구가 없다... 거래 끊기고 신규 분양마저 꽁꽁' '3년 전 밀어내기 분양 열풍...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살던 집 안 팔려 입주하고 싶어도 못해' '위기의 건설업, 구조조정 확산되나' '불 꺼진 아파트, 수도권으로 확산' 'B급 건설업체도 퇴출 위기 고조' '수도권 아파트 장기적으로 하락' '성원건설 후폭풍 건설업계 강타... 위기설 현실화되나'
심지어는 '미분양 급증→ 건설사 돈맥경화→ PF 부실화→ 금융위기'라는 제목의 기사까지 등장했다. 1년여 전인 2008년말~2009년초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 정도다.
이 같은 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어리둥절하다. 몇 달 전까지 온갖 논리로 '집값이 오른다'고 선동했던 신문들이 맞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사실 전문성이 부족한 국내 언론의 수준을 생각할 때 이들 언론이 앞날을 정확히 내다보기는 어렵다. 필자도 사람인 이상 앞날을 100% 정확히 내다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현상 이면에 있는 부동산 시장의 제대로 된 현실과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정한 경고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같은 보도에 극도로 인색하던 신문들이 갑자기 당장 한국 경제가 무너지기라도 할 듯이 호들갑떨고 있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소비자들을 현혹했던 지면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이 말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지면 한 켠에서는 '알짜 미분양'이니 '오를 곳은 오른다'는 둥 여전히 독자들을 현혹하는 궤변들을 늘어놓고 있다.
좋다. 백보를 양보해 과거의 터무니없는 선동보도는 잊어주기로 하자. 하지만 최근 쏟아내는 과장된 보도는 단순한 '냄비 근성'을 넘어서 건설업계 민원 해결이라는 속내가 엿보인다. 이들 기사들은 미분양 적체로 인한 건설업계의 위기나 PF 연체율 급증 등으로 인한 저축은행 등의 위기를 거론한 뒤 정부의 건설 부양책을 요구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업계 관계자는..."양도세 감면 혜택 연장과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의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위기설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뉴스 3월 9일자, 성원건설 후폭풍 건설업계 강타...위기설 현실화되나 기사에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현실적으로 금융지원 없이는 집을 사기 어렵다"면서 "무조건적인 DTI 규제 적용보다는 수요층별로 좀 더 세분화된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경제 3월 9일자, '3년전 밀어내기 분양 열풍'...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기사에서)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팀장은 "투기 수요가 적은 곳부터 대출 규제를 순차적으로 풀어 거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며 "건설사 입장에서는 금융권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규제 완화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설명한다. (매경이코노미 3월 10일자, '뜨거운 감자' 분양가상한제 폐지되나 기사에서)
이쯤 되면 이들 언론이 보도한 내용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건설업계 민원 해결용 기사라고밖에 할 수 없다. 명백히 이해관계가 있는 건설업계 부설 연구소 연구원들을 마치 객관적인 전문가인 양 내세워 기사의 결론을 내리는 방식 또한 아예 공식화돼 있다. 이들 언론의 보도나 '건설업계 대변인들'의 주장을 보면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한 번 생각해보자. 미국발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침체돼 있던 국내 부동산시장도 2008년 하반기부터 급속히 가라앉기 시작하자 정부는 막대한 부동산 부양책을 동원해 부동산시장과 건설업계를 떠받쳤다. 종부세, 양도세 등 각종 부동산세금을 감면해주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아파트 전매제한까지 풀어 사실상 투기를 조장했다.
또 온 세계가 금융 규제의 고삐를 다시 죌 때 현 정부는 주택대출규제를 모두 풀어버리는 역주행을 했다. 또 무주택 서민의 세금까지 포함된 재정으로 수조원 어치의 미분양 물량을 매입하고, 4대강사업을 포함, 불요불급한 각종 토건사업을 벌여 건설업체들에 돈을 퍼줬다. 부동산 거품이 한껏 부풀 때는 '시장에 맡기라'며 정부 규제를 한사코 반대하던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체들이 정반대로 "정부가 떠받쳐 주지 않으면 경제가 망한다"며 협박(?)했다. 당연히 상위 5%의 부동산 부자들을 핵심적 정치기반으로 하는 현 정부도 적극적인 부양책에 나섰다.
이처럼 막대한 '부동산 부양 총력전'을 펼쳐 억지로 살려준 결과 건설사들은 그 뒤 어떻게 했나. 부동산 광고에 잔뜩 굶주린 상당수 언론과 부동산 정보업체들과 삼각편대를 이뤄 여전히 고분양가 아파트를 팔기 위해 선동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분양이 잔뜩 늘어나자 또 다시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집값 떨어지면 서민경제 휘청? 건설사 거짓말 마
|
한 번 생각해보자. 미분양이 급증하는 것은 지금처럼 높은 가격대에 집을 사줄 수 있는 수요가 거의 고갈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어떤 재화의 가격이 너무 올라 수요가 줄고 공급이 과잉되면 가격을 내리는 것이 정상이다. 이런 가장 간단한 경제 원리는 우리가 중학교 때부터 배우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건설업계는 분양가를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중도금 무이자나 일부 아파트 분양가를 찔끔 인하하지만 생색내기 수준이다. 도대체 재고가 쌓이면 어떤 업종도 세일을 하는데 왜 건설업체들은 세일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또한 건설업계가 이처럼 기본적인 경제 상식을 벗어난 행태를 보여도 이를 제대로 비판하는 기사를 본 기억이 드물다. 오히려 건설업계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정부를 윽박지르기 바쁘다. 도대체 이 땅의 국민들은 죽으나 사나 건설업계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인가. 건설업계가 살기 위해서는 온갖 규제란 규제는 모두 풀고, 세제혜택은 모두 제공해야 하며 교육이나 문화, 복지 인프라는 후진국 수준으로 둔 채 모든 예산을 빼서 건설업계에 지원해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도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140%에 이르는 가계부채를 더욱 부풀려서라도 거품이 잔뜩 묻은 고분양가의 아파트를 사줘야 한다는 말인가.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기 동안 3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모두 먹여 살리기 위해 모든 국민들은 빚쟁이가 되고, 우리 아이들의 무료급식 예산도 모두 반납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그리고 이들의 확성기 노릇을 하는 언론들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금융시스템이 붕괴되고, 서민들이 더 힘들어진다"고 협박성 주장을 늘어놓는다. 건설업계와 부동산 부자들만 걱정했던 이들이 언제부터 그랬다고 이제 와서 서민 타령을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집값이 너무 뛰어 결혼을 못하고 무주택 서민들이 박탈감과 불안감에 휩싸일 때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던 그들이 언제부터 그토록 서민들을 걱정했는가.
이들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서민들이 더 힘들어진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가장 힘들어진다는 사실은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들은 또한 국내의 경우 LTV나 DTI 비율 측면에서 별 문제가 없어 집값이 폭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금융시스템이 붕괴된다는 모순된 주장을 버젓이 내놓는다. 그러면서 건설업계와 부동산 부자들을 돕는 것이 국민경제 전체에도 이로운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금 건설업계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건설업계의 위기이지 국민경제 전체의 위기가 아니다. 진정한 국민경제의 위기는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앉은 가계경제의 위기이다. 건설업계와 이들의 대변자들은 지금 DTI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가계 부채를 더 늘려서라도 지금의 집값을 떠받치고 건설업체들을 먹여 살려 달라는 파렴치한 요구일 뿐이다. 2000년대 내내 국내 가계가 부동산에 올인하면서 늘려온 부채를 줄여야 할 판에 건설업계를 살리기 위해 가계 부채를 더 키우라는 주문이 정상적인 요구인가.
일본 경제 발목 잡은 '좀비기업', 우리도 따라가려나
오히려 건설업계와 이들의 대변지들이 요구하는 무리한 부동산 부양책은 부동산시장을 장기침체로 몰아갈 공산이 크다.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이 부지기수로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초기의 줄도산 행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일본의 건설 토목산업 종사 수는 91년 604만명에서 96년에는 676만명으로 오히려 72만명이 늘어났다. 반면 이 기간에 제조업 종사자 수는 1563만명에서 1450만명으로 113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또한 이 기간의 건설 토목관련 업체 수를 보면 60만 2000개에서 64만 7000개로 약 4만5000개나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이 일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기에는 그만큼 건설시장의 파이가 줄기 때문에 부동산 붐 때 생겨났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정부의 막대한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버블 붕괴기에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다. 제대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건설사의 부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전문가인 사이토 세이치로씨는 "90년대의 재정지출이란 이러한 특정산업(=건설산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고,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했다.
현재 정부 정책은 과거 일본이 장기 경기 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주택대출 규제를 푼 결과 지난 한 해 동안에만 44조 원의 주택담보대출이 더 늘어났다. 나중에 주택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기에 들어설 무렵 마중물로 쓸 수 있는 돈을 버블을 키우는 방향으로 써버린 것이다. 또 부동산 시장에서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의 급증으로 공급과잉의 신호가 명백한데도 서민들이 필요로 하는 공공주택은 짓지 않고 분양용/매매용/투기용 주택만 계속 지어대게 하고 있다. 미분양 물량 매입과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건설업체에 자금을 공급해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켰다. 그렇게 해서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동산 거품기에 세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 수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계속 분양물량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기에 잔뜩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국민 경제 전체가 언제까지 먹여 살릴 수는 없다. 자신들의 경영 판단 잘못과 과욕으로 빚어진 잘못은 그들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미분양 물량의 급증은 건설업체의 터무니없는 고분양가 전략이나 주택 수급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공급 물량을 주먹구구식으로 늘려온 정부의 정책 실패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은 외면한 채 건설업체 위기를 다시 규제 완화나 국민 세금으로 도와달라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지금 국내외의 악화된 경제 상황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건설업계뿐만이 아니다. 자영업자와 제조중소기업, 저소득계층 등 우선순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계나 계층도 적지 않다. 그런데 굳이 건설업계를 최우선적으로 도와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전체의 50%가 넘는 비정규직, 자금난에 시달리다 못해 도산하는 중소제조업체, 사실상 폐업 직전인 자영업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등 정부 예산이 가야 할 곳은 천지다. 그런데 경제적 약자에게는 쥐꼬리만한 예산을 지원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건설업계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별대우해야 할 근거라도 있는가.
부동산 부양이 아닌 집값 거품 빼야
당장 눈에 보이는 버블 붕괴의 충격을 줄이겠다는 근시안적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 정부는 자신들 임기 내에 돌아올 버블 붕괴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대손손 이 땅에서 살아갈 국민들에게는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를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한국 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은 피해야 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재벌급 건설업체 가운데 단 하나라도 쓰러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집값이 여전히 일반 가계의 소득 수준 대비 지나치게 높은 상태이고, 어떤 은행도 파산 위험에 처해 있지 않은데 온갖 부양책을 동원하라는 요구는 너무 지나치다.
어렵더라도 당분간은 냉철한 자산시장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에 따라 부동산 거품이 자연스레 해소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무리하고 부실한 경영을 해온 건설업체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자연스레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집값이 일정한 바닥을 찾고 유효수요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부동산 경기를 가장 빨리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인위적으로 가격을 떠받치면 거래가 형성되지 않아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길어질 뿐이다.
그런 점에서도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이제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깨닫고 정부에 집값 부양책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해야 한다. 새시 업체나 인테리어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거품이 해소돼 시장의 가격 신호에 따라 거래가 일어나는 것이 가장 빨리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집값 거품 해소가 늦어져 거래가 계속 침체되면 부동산 관련 업체들은 모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 있다. 또 가계 입장에서도 자꾸 부동산시장의 언저리를 맴돌게 하지 않고 빨리 손절매를 하고 부채를 청산하게 해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실물 경제를 하루라도 빨리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 부동산에 돈이 묶여 있을수록 실물 경제는 악화되고 이것이 다시 부동산 시장을 더욱 위축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반면 건설업계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력과 행정력은 아껴뒀다가 부동산 가격이 소득 수준에 맞게 조정된 일정한 시점에서 붕괴의 충격으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들에 대해 원칙과 기준을 정해 도와줘야 한다. 아래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현재 집값 수준은 고점에서 어느 정도 빠지기는 했으나 큰 틀에서 볼 때 부동산 부양책을 쓸 때가 아니라 여전히 집값 거품을 빼야 할 때이다.
|
지금처럼 5%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체들을 위해서 부양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로 힘겨워 하는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해 써야 한다. 지금 정부가 건설업체들과 금융기관에 지원하는 돈의 절반만 제대로 서민들을 위해 쓴다면 부동산 거품이 빠진다고 서민들의 삶이 특별히 더 나빠질 이유가 없다. 지금 한 달에 10만원, 20만원이 없어서 냉기가 도는 집안에서 변도 치우지 못하고 사는 빈민들이 수두룩하다. 왜 그런 저소득층에는 땡전 한 푼 지원을 늘리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도로며, 공항이며, 아파트를 짓는데 수십, 수백조원의 예산을 써대려 하는가.
건설업계 주장 들어줘도 주택시장 안 살아난다
한편으로는 현재 건설업계가 요구하는 주장을 들어준다고 한들 주택시장이 살아나기는 어렵다. 언론보도를 보면,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의 주요 요구는 분양가 상한제 폐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연장, DTIi규제 완화 등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 요구 조건이 관철됐을 때 시장에 미칠 파장을 한 번 생각해보자.
우선,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고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연장해보라고 하자. 그러면 지금의 고분양가 아파트가 팔릴까. 이미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집값을 유지한 채 이미 마른 수건 짜내듯 마지막 남은 수요까지 다 짜내 부동산 투기 부양을 한 결과 이제 지금 가격대에 집을 살 수요는 이미 거의 고갈됐다. 이런 판에 분양가를 내리지 않고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해 계속 분양가를 올리겠다면 올려보라.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연장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주택 거래가 위축되고 미분양이 급증한 것이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전면에 내걸고 온갖 마케팅을 펼쳤지만 대규모 미분양이 난 것이다. 그동안에도 효과가 없었는데, 양도소득세 혜택을 연장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 리 없다.
DTI규제 완화? 이것도 정 원한다면 DTI규제를 풀어줘 보라. 사실 현재 경제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고, 정부가 제 정신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DTI규제만큼은 절대 풀어서는 안 될 시기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가계 경제가 파탄나고 나라 경제가 망해더라도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만은 살아야 하겠다면 DTI 규제를 풀라고 해보자. 대신 DTI규제를 풀면 DTI규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조치인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최소 몇 달은 앞당기게 될 것이다. 현재 사상 최저 금리 수준에서도 부동산시장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는데,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어떻게 될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다.
이처럼 건설업계의 요구대로 모두 했는데도 부동산시장이 살아나지 않아 일반가계들의 기대심리가 더 꺾이거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면 주택시장의 위축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야말로 연착륙이 아니라 경착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국내 부동산 문제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정권의 좌우를 가리지않고 무능과 무지로 넘쳐나는 정치권과 정부의 거듭된 정책실패와 부동산투기 등 부정부패의 탓이 크다. 하지만 업계 전체로 '대마불사' 논리에 빠져 무리한 경영을 해온 건설업계나 부동산 광고에 눈이 멀어 이들을 옹호해온 상당수 언론에도 매우 큰 책임이 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수급이 무너져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든 지경까지 와 있다. 이제는 그야말로 시장원리에 맞춰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부동산 가격이 자산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맞춰 일정한 수준까지 조정되도록 하는 게 순리다. 이를 거부하고 건설업계가 또 다시 무리한 부양책을 요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경착륙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건설업계의 분양 광고에 크게 의존해온 언론사들도 경착륙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부동산에 올인해온 언론들은 건설사 민원 해결에 열중하기보다는 국민경제 전체의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관점에서 보도하기 바란다. 그것이 독자인 국민들로부터 버림받는 길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