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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보이지 않는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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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산업관계연구소 댓글 0건 조회 1,271회 작성일 10-03-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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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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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 금융시장은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준) 의장이 한 마디하면 출렁거리곤 한다. 언제부턴가 이런 패턴이 공식화되면서 금융계에서는 연준 의장의 영향력을 ‘보이는 혀’라고 부른다. 이는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는 것을 빗댄 조어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혀’가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지난 주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어디서, 어떻게 해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주 증시에서는 강만수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장이 한국은행 총재에 내정됐다는 말이 그럴 듯하게 나돌았다. 당연히 시장은 크게 영향을 받았다. “강 위원장은 정부 입장을 충실히 이행할 사람이니까 금리는 당분간 저금리로 묶어 둘거다. 게다가 높은 환율을 용인하자는 입장이었으니까 환율은 뛸 거다.” 이런 분석이 나오면서 우리 금융시장을 뒤흔든 것이다.  건설업계도 지금 ‘보이지 않는 혀’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속칭 ‘짜라시’라고 불리는 증권가 정보지에서 거론됐던 ‘중견업체 5~6개사 부도설’이 이번주 일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지들은 그럴듯한 분석까지 곁들여 보는 이로 하여금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당사자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매우 크며,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도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에 더 가깝다.

 루머에 거론된 건설사들은 사소한 일이 확대 부풀려졌거나 다른 사안이 잘못 알려졌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사실무근이라며 깜짝 놀라기도 한다. 각종 루머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사들은 근거없는 부도설 탓에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입소문(口傳)은 공을 들인 홍보보다 무서운 법이다. 또 경제상황이 안좋을수록 소문에 더 현혹되게 마련이다.

 

 소문은 특성상 단계를 더 할수록 확대 재생산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 뱉은 말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업체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산매각과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을 통해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다. 루머는 이런 업체들의 뼈를 깎는 회생 의지마저 꺾게 만든다.

 이 같이 ‘보이지 않는 혀’로 인한 피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여로모로 건실한 업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문 이니셜이 같다는 이유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를 보는 경우를 허다하게 봤다. 더 큰 문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출처불명의 루머가 확산되면서 건설산업 전체가 도매금으로 불확실성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저런 소문이 현실화될 지는 모르겠지만 소문이 떠돌 때는 기업이나 개인입장에서 몇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우선 그 소문이 얼마나 그럴듯 하냐를 따질 게 아니라, 그 소문이 현실화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특히 나 자신이나 우리 회사의 입장과 관련해 어떤 영향이 있느냐를 잘 계산하는 게 중요하다. 시장에서는 설령 소문이 소문으로 끝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소문이 시장에 이미 얼마나 반영돼 있느냐 하는 점이다. 만일 예전에도 떠돌던 이야기라면 시장은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소문의 위력만 믿고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결정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혀’의 위력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혀를 너무 믿지는 말자. 냉철하게 분석만할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혀’라도 두려울게 없다. 아무쪼록 소문이 소문으로 끝나길 바랄뿐이다.

서태원기자 tae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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