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재분리 발주 확대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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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409회 작성일 10-04-20 10:22본문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자재분리 발주로 인해 발생할 손익 여부를 떠나 냉철하게 판단해보자. 자재는 합판과 철근과 같이 KS규격품으로 기성제품과 레미콘이나 아스콘 등과 같은 주문생산품이 있다. 2가지 속성에 대해 건설현장에서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자. 먼저 철근이다. 수요자인 시공업체는 철근이 규격품임에도 불구하고 가공 과정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10m와 8m의 철근량을 각각 달리 주문했다고 하자. 이 경우 공급자는 창고 혹은 공장에 쌓인 재고 중 공급 가능한 양을 기준으로 하여 공급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만약 주문량이 소량일 경우 채산성을 이유로 미룰 수도 있다. 재고량이 주문량에 못 미친다면 공급자는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기에 납품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주문자는 철근 공급지연으로 현장이 대기 상태에 들어간다. 당연히 공기가 지연된다. 공기가 지연되면 시공자는 간접비가 늘어나고 발주자는 물가상승비를 지불하게 된다. 그리고 계약 준공일을 못 지킬 경우 지체상금을 발주자는 누구에게 물려야 하는지, 그리고 시공계약자의 간접비 증가를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는지 문제가 된다. 정반대의 경우 만약 공급자가 주문자가 요구하는 양을 넘어 한꺼번에 공급하고자 하는 경우 현장 재고관리 부담을 이유로 현장에서 거부할 경우에 발생하는 책임공방은 누가 해결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레미콘의 경우는 좀더 심각하다. 레미콘은 재고가 없다. 생산 후 90분 이내 타설이 완료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도심지에서 20% 이상이 90분이 초과된 상태임에도 그대로 사용된다고 한다. 현장에서 타설 준비 후 레미콘공장에 주문을 했다고 가정하자. 90분이 초과된 레미콘은 현장에서 인수를 거부한다면 이로 인한 비용은 누가 물어야 하는가? 현장 근로자는 당연히 대기 상태이므로 일당을 지불해야 한다. 설사 일찍 들어온 레미콘도 시료 채취 시험 결과 성능이 미달될 경우 당연히 현장에서 인수를 거부한다. 이때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품질 문제로 인수는 거부되고 현장은 대기상태에서 인건비 등 직접비용은 물론 장비와 현장사무소 운영비 등 간접경비 증가분에 대한 배상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논리적으로 보면 분리 발주한 발주자에게 책임이 있다. 발주자의 재량권에 의한 선택이었다면 당연히 발주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정책에 의해 국가가 법령으로 강제했다면 그 손실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건설회사들이 연간 공사계획에 따라 자재공급을 연단위로 계약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자재분리 발주를 권장하는 정부부처는 제조업은 보호할지언정, 건설현장 보호 혹은 발주자 보호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이 직접 레미콘을 생산하는 것이나, 인천공항건설사업소에서 레미콘 공장을 현장에 건설한 것은 공사품질과 효율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정부 정책은 이런 효율성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만약 공사 품질과 납기 내 준공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가진 정부부처라면 이런 선택을 함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자재분리 발주를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발주자 재량에 맡기는 게 올바른 선택이다. 재량권을 가진 발주자가 자신의 관리 역량을 근거로 소화가능하다고 확신할 때 분리 발주도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법은 보편적 기대 가치가 공유될 때라야 부작용이 없다. 건설공사에서 자재 분리 발주는 발주자와 시공계약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비록 자재공급자의 업역은 보호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10%를 보호하기 위해 90%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재검토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다. 세계건설시장의 큰 변화 흐름은 설계와 시공통합발주 확대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공사의 책임을 계약자에게로 집중시키는 추세다. 국내 건설산업은 이와 정반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한국시장만이 글로벌 시장 흐름과 무관하게 움직여도 좋을 만큼 시장이 크거나 주도권이 확실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세계 흐름에 맞춰 가는 게 정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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