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생협력 저해하는 공공공사 입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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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207회 작성일 10-08-06 09:06본문
최민수(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
우리 사회에서는 단골이 많다. 퇴근 후 술 한잔 하더라도 단골집은 포근하다. 주인장의 인심도 후하고 서로 간에 신뢰가 있다. 소비자가 단골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비용 대비 효용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단골 관계가 형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건설시장에서는 단골이 거의 없다. 항상 새로운 발주자, 새로운 계약자뿐이다. 현재 대부분의 공공공사는 조달청을 통하여 입찰을 본다. 발주자 입장에서는 누가 낙찰자가 될지 전혀 모른다. 지난번에 공사를 했던 모 업체가 아주 성실했어도 다시 활용할 방법이 없다. 수의계약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제한경쟁을 하려 해도 지나친 입찰 제한은 허용되지 않는다. 항상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한다. 그것도 경쟁률이 200대 1을 넘는다.
그러다보니 발주자 입장에서는 항상 새로운 계약자를 만나게 된다. 매번 발주자는 진도 측정 및 기성금 청구 절차 등을 새로 알려주어야 되고, 계약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발주자의 공사관리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이 수반된다. 사회적 비용이 증가된다는 것이다.
또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1회성 관계이기 때문에 발주자에게 굳이 충성할 유인을 찾지 못한다. 아무리 공사를 열심히 해도 다음에 다시 불러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공공사 낙찰자 결정제도는 너무 투명해서 이러한 자의적 판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 1회성 계약이 많아지면서 하자보수 등에도 미온적인 태도가 된다.
결과적으로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번 계약에서 최대한 이익을 많이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품질은 지적받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도로 하고, 공사비를 부풀릴 궁리를 하게 된다. 발주자와 건설업체가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장기적 협력 관계가 중요
만약 발주자와 건설업체가 1회성 관계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건설업체의 충성도가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당장의 이윤이 급급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수주 가능성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발주기관인 국립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에서 마련한 ‘Procure 21’이라는 조달혁신프로그램의 운영 성과를 보면, 소수의 정예화 된 사업자 풀(pool)과 반복적으로 사업 시행 시 발주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막대한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우선 파트너로 선정된 건설사는 발주자의 니즈(Needs)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사업 수행을 통하여 해당 시설물의 구성요소 및 사업관리절차의 표준화를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축적된 사업 경험을 통해 프로젝트 수행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상호간의 활발한 아이디어 교환을 통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 발주자는 매번 사업자 선정에 소요되는 인적, 물적 낭비를 제거할 수 있고, 건설사 입장에서는 발주자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 입장에서 원가절감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진정한 상생협력이 가능해질 수 있다.
주계약자형 공동도급은 오히려 상생을 저해
원ㆍ하도급 간 상생협력은 어떠한가? 최근 하도급 공종의 분리발주가 늘어나면서 종합건설업체와 하도급업체 간에도 1회성 관계가 많아지고 있다. 당연히 장기적 협력관계도 퇴색하고 있다. 원ㆍ하도급 간에 커뮤니케이션의 갭이 증가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할 건설현장은 휘청대고 있다. 적기에 자재와 장비, 인력이 투입되지 못하여 공정이 지연되거나 재시공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하자책임도 불분명해지고 원ㆍ하도급 관계가 적대적이 되면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최근 원ㆍ하도급 간 상생협력을 강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도입한 주계약자형 공동도급은 오히려 상생협력을 더욱 저해하는 역기능을 노출하고 있다. 상생협력이란 원도급자와 하도급자 간에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가지고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관계가 최선이다. 그런데 주계약자형 공동도급 하에서는 우선 입찰에 참여하려면 짝을 이루어야할 전문업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업체든지 짝만 맞추는 데 급급하다. 장기간 협력관계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업체를 찾아 매번 짝을 바꾸는 경향도 있다. 어떻게 상생협력이 확대되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건설업의 발전을 도모하려면 발주자와 건설업체 그리고 원ㆍ하도급 간 상생협력은 피할 수 없는 ‘화두(話頭)’이다. 앞으로 발주자 측에서는 건설업체와 1회성 관계를 갖기보다는 신뢰있는 업체와 장기적인 협력관계 구축을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찰 제도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200대 1을 넘어서는 운찰제 하에서는 발주자와 건설업체 간 상생협력이 곤란하다.
또 원ㆍ하도급 관계도 장기적으로 아웃소싱회사나 자회사처럼 기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계약자형 공동도급에 집착하기보다는 종합건설사의 하도급 계열화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건설산업의 진정한 상생을 유도할 수 있는 입찰 제도에 대하여 보다 깊은 통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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