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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주택ㆍ부동산과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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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217회 작성일 10-08-0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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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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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EBS TV에서 ‘이야기의 힘’이라는 다큐멘터리 3부작을 방영한 바 있다. 신화에서 할리우드 영화까지 이야기는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미래는 이야기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토리 비즈니스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야기 자체가 중요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광고ㆍ컨설팅ㆍ카운셀링과 같이 타인을 설득하는 산업의 규모가 미국 전체 GDP의 25%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스토리적 요소에 의존한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야기의 힘을 빌려 관광ㆍ문화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와 지자체들의 시도가 자주 눈에 띄고 있다.

 기업 경영자들 역시 이야기의 중요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미래가 온다>의 저자 다니엘 핑크는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려면 스토리를 통한 감성적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부 직원과 주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단순한 정보가 아닌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고객을 상대하는 마케팅 분야에서는 특히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공급과잉시대에 제품과 서비스를 차별화시키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통한 감성 호소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는 반드시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가 한 집단의 신념처럼 굳어진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호소력을 갖는 이야기는 사람을 자극하는 긍정적인 힘이 있다. 그러나, 때론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힘을 얻게 된 이야기는 괴물로도 변할 수 있다. 이 경우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기업이나 사회 또는 국가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한다.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실러가 공저한 <야성적 충동>을 보면,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요인 가운데 이야기도 한몫을 차지한다. 저자들은 이야기는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고 말한다. 자신감에 힘입은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전염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과신하게 된다. 사람들 사이를 파고드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이야기가 소비나 투자의 과잉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 방향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다. 한번 힘을 받은 이야기는 사람들의 경제행위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 주식과 부동산 같은 대중의 주된 투자 영역이 이야기의 힘에 영향받기 쉬운 분야일 것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염되기 시작하면 투자는 곧장 투기열풍으로 치닫게 된다. 17세기에 차분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튤립 투기 광풍에 빠진 것도 이야기에 힘입은 바가 컸을 것이다. 지금도 주식과 부동산시장은 넘쳐나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로 과열과 침체를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소위 강남발 주택가격 급등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영향 요소들을 설득력 있게 결합한 것은 결국 이야기이다. 수많은 재테크 성공사례와 전략들이 이야기가 되어 사람들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참 이야기가 퍼져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 거품 여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정반대의 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사람들은 얼마나 일방적인 이야기에 압도되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와 같다. 개인 또는 사회가 위축되어 있을 때 새로운 이야기는 다시 일어서려는 용기를 북돋워 준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날수록 사람들은 호소력 있는 감성적 이야기를 갈구한다. 반면, 전염성 강한 일방적 이야기는 개인은 물론 사회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무서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신중한 경제주체들도 한 목소리의 이야기만 들려올 때는 스스로의 판단력을 상실할 때가 많다. 정부 역시 판단 실패로 뒷북 정책을 펼쳐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 신문을 펼쳐 보기가 두렵다. 아파트 미분양, 집값하락, 거래실종 등 온통 불길한 이야기뿐이다. 물론 사실에 근거한 기사이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이야기는 반드시 객관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불길한 이야기가 퍼져나가 부동산 폭락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야기의 전염을 인위적으로 막기란 쉽지 않고 또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세련된 정부정책은 이야기가 비이성적으로 퍼져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시의적절한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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