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본식 장기불황, 남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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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365회 작성일 10-09-10 09:14본문
이상호 (GS건설 경제연구소장)
글로벌 경제가 다시 힘찬 회복세를 보일 것인가? 미국과 유럽 경제의 급속한 회복 가능성은,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지적했듯이, 대부분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본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은 모두 일본식 장기불황의 초입에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린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 같지는 않지만, 1% 내외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는 것이 선진국 경제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것이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 경제는 견조한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IMF는 최근 금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1%라고 발표했다. 한국 경제는 ‘선진화된 신흥시장’으로서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가 관건이지, 미국ㆍ유럽처럼 일본식 장기불황을 겪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은 다르다. 미국 경제가 더블딥을 겪지는 않는다지만, 미국 부동산시장은 이미 더블딥을 겪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8ㆍ29대책은 ‘예상했던 대로’ 부동산시장에 별다른 파급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대책 발표 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효과를 논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시간이 좀더 지나더라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본다.
건설업계가 당면한 미분양이나 입주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ㆍ세제 지원을 통한 수요촉진책보다 공급물량 조절정책이 중요하다. 이유는 지난 10년간 부동산시장이 초호황을 겪으면서 공공과 민간 모두가 공급여력을 과도하게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2005∼2009년간 수도권에서는 연평균 28.9㎢의 택지개발이 완료되었고, 2007년 이후 지정된 택지지구만 해도 135.4㎢(주택수로 환산하면 65만 가구 규모)에 달한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LH공사의 공공택지 입찰이 유찰되거나 계약해지 사례가 늘고 있다. 2009년 말 현재 수도권에는 93곳(51.4㎢)의 도시개발구역이 지정되어 있는데, 이 중 개발이 완료된 곳은 10곳(1.7㎢)에 불과하다. 나머지 83곳(49.7㎢)은 사업추진 중이거나 미착수 상태인 공급대기 물량이다. 민간도시개발사업도 부동산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2008∼2009년간 29곳(14.8㎢)이나 지정되었다. 전국의 재개발ㆍ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지정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서울 925곳, 부산 487곳, 인천 212곳…. 이런 식이다. 하지만 서울 외에는 도시정비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는 사례가 드물다. 그러다보니 지자체들도 도시정비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공공택지, 민간택지, 재개발ㆍ재건축을 가릴 것 없이 과도한 주택공급 여력이 존재하다보니 침체기에도 공급물량이 쏟아진다. 금년 상반기 주택공급 관련 국토해양부 통계를 보자. 상반기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은 전년 대비 11.5%(수도권 37%), 허가면적은 42.9%, 착공면적은 45.2% 늘었다. 금년 8월 말까지 수도권 신규 분양아파트는 9만5000가구로 최근 5년 동기 대비 32% 늘었다. 부동산PF 및 금융비용 문제 등이 과도한 공급여력과 결합하여 시장 침체 국면에서도 ‘어쩔 수 없는’ 공급물량을 계속 쏟아내는 것이다. 아마도 분양시장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기미만 보이면, 공급물량이 대거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부동산경기가 일시적으로 호전되더라도, 곧이은 과잉공급으로 다시 침체국면이 반복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겪을 수 있다. 건설업체는 과잉 공급여력이 수급에 미칠 파급효과를 냉정하게 꿰뚫어 보고 대비해야 한다.
금융위기 직전의 경제호황기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로 거품경제를 정당화시키곤 했다. 하지만 하버드대학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가 800년간 66개국의 금융위기 사례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다른 게 없었다.” 우리 부동산시장이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다수는 “우리는 일본과 다르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일본과의 차이를 시시콜콜 늘어놓기보다 ‘구조 동일성’을 눈여겨보자. 우리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을 겪지는 않겠지만, 일본 부동산시장의 장기불황은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 특히 과잉 공급여력을 인정한다면, LH공사와 지자체만이 아니라 정부도 보금자리주택의 입지와 공급규모를 포함해서 공급물량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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