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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여론 제대로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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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5-10-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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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탈원전 정책으로 회귀 여부가 관심사였다. 당의 반원전 정서가 드러날 것인지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드러날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여러 차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계획된 원전 2기와 SMR(소형모듈형원자로) 건설이 이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9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원전을 신규로 지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신규 원전에 대한) 의견은 최종적으로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길 것”이라고 밝혔다. 말이 바뀌었다.

한편 산업부 김정관 장관은 산업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안정적인 미래 전력 수급을 위한 계획이라면서 “신규 원전 2기, 소형모듈원전(SMR) 1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게 여론을 보고 정부가 말바꾸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행정부 내에서 다른 두 부처의 장관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부처에 따라서 관점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것이 정상이다. 그 때문에 마찰이 발생하고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잘못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론 청취는 중요한 민주정치의 과정이다. 중요한 국가정책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듣고 방향과 강도를 정하는 것은 적절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컨대 민감하고 공개하기 어려운 외교나 국방정책은 공개적으로 하기보다는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국회나 감사원이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과연 전력정책과 같은 전문적 정책이 다수결의 문제인지도 궁금하다. 사회과학의 영역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주식시장의 동향은 사실 자체보다도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움직이는 경향이 많다. 이런 문제는 다수의 의견이 지배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과학과 산업의 영역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또 문제의 성격에 따라서 계획을 수립하고 공청회를 할 것인지 계획 자체를 여론에 따를 것인지도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광장민주주의와 여론수렴이 만능이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 여론수렴의 과정도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국민의 의견을 묻는다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그리고 그것을 합당한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전력정책에 대해, 전기요금을 내보지 않은 18세 젊은이의 의견을 듣는 것은 좀 이상했다. 전기요금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들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전기요금을 낸다. 삼성전자는 매년 약2조 원을 낸다. 지금은 약3조 원이 되었다. 곧 5조 원이 되고 10조 원이 된다면 삼성의 경쟁력이 유지될 것인지, 국내에서 기업활동이 가능한지 걱정해야 한다. 또 삼성의 주가가 유지될 것인지도 걱정해야 한다. 이런 기업에게는 의견을 묻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다. 전기요금에 무관한 사람의 여론은 의견이 아니라 취향일 뿐이다.

또 정작 중요한 자료인 가격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공청회를 거친다. 이때 새로 수립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전기요금은 얼마가 될 것인지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전기요금도 지금이 아니라 15년 후의 전기요금도 말해줘야 한다. 오늘만 사는 것이 아니니까. 이런 정보가 없는 선택은 눈을 감고 임의로 고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 전력 수요를 너무 낮게 예측했다는 평가도 있다. 2035년의 전력 수요를 낮게 예측함으로써 두 자리수 이상 건설해야 하는 원자력발전소를 2기와 SMR 정도로 낮췄다는 평가이다. 전력수급계획은 수요를 공급하는 계획이다. 이게 어긋나면 정전이 나거나 가격이 오를 것이다. 물론 당국에서는 대대적인 절전운동을 펼치면서 정책 실패를 덮으려고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의견을 물으려면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라는 것이다. 또 의견을 물어볼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여론수렴은 여론조작이고 국민 기만이 되어 버린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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