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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발주기관도 부정당 제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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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84회 작성일 11-12-0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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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의 부정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표현 가운데 3불(不)이라는 게 있었다. 부정, 부패, 부실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 여기에 불(不)자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최저가낙찰제 대상공사 입찰에 참여하면서 허위서류를 제출하거나 위?변조한 혐의로 시공능력평가액 기준 상위 10개사를 포함, 90여개사가 무더기로 ‘부(不)정당업자’ 제재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재를 결정한 발주기관도 고민은 많았을 것이다. 기관별 처분에 혼선마저 나타나고 있다. 조달청, LH, 도로공사 등은 대상업체들에 길게는 9개월 짧게는 3개월 동안 공공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다. 반면 인천시와 경기도 등 지자체는 면책처분을 내렸다. 발주기관은 “위반을 적발한 이상 처분을 내려야지 면하는 것은 재량권 유기”라고 주장한다. 반면 지자체는 “잘못된 제도를 바꾼 상황에서의 제재는 재량권 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는 표면적으로 입찰서류 조작업체에 대한 무더기 제재로 나타났다. 하지만 출발점은 잘못된 제도다. 이는 국가 최고 감사기관의 평가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저가심의제도가 불합리한 절감사유 인정기준 등 구조적인 문제로 공정성 훼손 및 부조리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발주기관은 입찰자들이 제출하는 절감사유서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거나 진위 확인이 불가능한 절감사유를 인정한 채 저가심의를 운영해 서류를 위?변조해 제출하는 것이 관행화됐다”고 진단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관행’이라는 단어다. 서류조작은 공사비 절감사유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2단계 저가심의제도가 도입된 지난 2006년 5월부터 감사원 감사가 시작된 2010년 초까지 4년여 동안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감사원의 감사가 없었더라면 이 같은 상황이 얼마나 지속됐을지도 모른다. 이러다 보니 건설사들은 가책조차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가정 자체가 무의미하지만 서류조작을 조기에 적발해 적절한 제재를 내렸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입찰 때 허위서류 등은 근본적으로 발주자가 걸러내야 할 책무로 인식되고 있다. 가격만 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의 틀을 유지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십, 수백건의 입찰을 진행하면서 이 문제가 방치돼 왔다는 것은 발주기관이 직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몰랐느냐, 알았느냐가 논란이 될 수도 있다. 몰랐다면 자격 미달이다.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하면 묵인이나 방조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무게 중심이 쏠린다. 알았든 몰랐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건설사들은 이미 부정당의 멍에를 썼다. 제재강도에 따라 최악의 경우 기업의 존립이 위협받는 사태까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시쳇말로 ‘독박’쓴 꼴이다. ‘그들이 만든 잘못된 제도와 집행으로 자기들만 피해를 입었다’는 푸념이 허투루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명백한 잘못을 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할 말은 많아도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후환이 두려워서다. 처분대상에서 제외된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냐며 오히려 쉬쉬한다”고 씁쓰레했다.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불황의 터널을 지나는 대한민국 건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악법도 법이다’는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받자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탈옥을 권유했지만 독약을 마시고 죽으면서 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명제는 아무리 불합리한 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논리에 인용돼 왔다. 독재나 권위주의 정권이 권력유지와 억압적 법집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해 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준법성이 아니라 악법이 위대한 철학자를 죽였다는 점이다. 지금 정부와 발주기관은 ‘악법도 법이다’가 아니라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건설인들의 부릅뜬 눈도 기억해야 한다. -박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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