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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최저가 확대와 건설산업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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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85회 작성일 11-10-0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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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석 조달청 시설사업국장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사관과 중국 베이징 대사관에서 조달관으로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미국, 중국의 조달당국자들과 양국 간 조달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할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우리 낙찰제도를 설명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적격심사제, 낙찰하한율에 대한 것이었다.

 “재무상태, 실적, 기술능력 등으로 구성된 공사이행능력 70%와 가격 30%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할 때까지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실제 낙찰을 받기 위해서는 낙찰률이 79.995% 직상”이어야 한다는 대목에 와서는 말문이 막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응찰업체 대부분이 기술점수 만점을 받고, 실제로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 기술이 아닌 운에 의한 경쟁을 한다는 것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300억원짜리 정부공사 입찰을 하면서 설계서, 내역서를 한 번도 들춰보지 않고 가격만 맞추면 운좋게 낙찰받을 수 있는 제도로 인해 입찰 경쟁률이 무려 240대1에 이른다. 정부가 제시한 공사설계서, 내역서를 면밀히 검토해 어떻게 하면 공사비 절감계획을 잘 마련해 낙찰 가능성을 높일까 고민하는 최저가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러한 적격심사제도로 발주되던 100억~300억원 공사를 최저가로 전환하는 정부 계획에 대해 건설업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행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자료 형식을 빌려 건설협회에서 최저가낙찰제 확대의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했다.(건설경제 9월19일자 참조)

 최저가로 전환하면 지방에만 수주량이 7106억원 줄어들고, 건설 근로자도 5750명 감소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공사수주물량 감소분부터 살펴보자. 위 수치는 최저가를 확대할 경우 해당 공사 수주규모가 36.6% 감소한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실제로는 5% 내외이고, 전체 공사수주 감소량은 1% 내외이다. 이는 뒤에서 설명한다).

 2005년도에 5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최저가를 확대한 결과 해당공사 수주량이 36.6% 줄었으니, 이번에도 100억원으로 대상을 확대하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매우 이상한 논리다. 왜냐하면 금액대별 수주량은 낙찰률보다 그 해의 사회간접자본(SOC) 공공발주량, 공사규모별 발주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통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2006년 건설업 통계연보를 보면, 100억~500억원 수주량은 거의 변화가 없다(2005년 10조3189억원→2006년 10조3087억원 ∇0.1%, 최저가로 전환된 300억~500억원 통계는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수주량 감소가 크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추정가능하다).

 이러한 잘못된 수주량 변화 분석에 근거한 일자리 감소분 추정치 또한 잘못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공사 수주량이 36.6% 줄고, 노무비 비중(28%)만큼 근로자 연봉으로 나누어 일자리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낙찰률에 따라 계약금액이 다소 감소하더라도 비례적으로 노무인력을 감축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공사물량이 확정된 상태에서 노무인력을 줄이기보다는 일반관리비, 이윤, 현장경비 절약 등으로 약간의 낙찰률 하락을 감당해낼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못된 자료가 각종 언론과 국회에서조차 공식통계로 인용되고,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건설협회 스스로 공식 발표한 통계연보를 무시하고, 각 발주기관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취합해 국회에 제출했다는 설명을 접하고 씁쓸하기까지 하다.

 좀더 명확하게 분석해 보자. 분석의 대상은 조달청 발주분으로 한다. 모든 공공발주분의 30% 넘게 차지하고 있으니, 이를 근거로 공공발주 전체를 유추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조달청 발주규모는 14조8400억원(2010년)이다. 최저가로 전환되는 300억~100억원 적격심사 건은 14.5%를 차지한다. 현재 적격심사 낙찰률이 80.1%이고, 최근 개정된 최저가심사제도 낙찰률이 74% 내외이니 낙찰률 하락은 5~7% 수준이다. 즉 최저가 전환에 따른 전체 공사의 수주감소율은 1% 내외이다(14.5%×5%~7%=1% 내외).

 위 분석은 현재 300억원 이상 저가심사 방식을 100억원 이상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정부는 중소건설업체가 저가심사를 받는 부담을 덜어주고, 낙찰률 또한 현행 74%보다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심사방법을 적정하게 설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최저가 확대에 따른 수주 감소량은 1% 내외”라는 분석에서, “최저가 확대에 따른 수주 감소량은 없고, 기술력 있는 건설업체의 수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저가 확대 철회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 모처럼 정부와 건설업계뿐 아니라, 국회까지 포함해 발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좋은 기회다. 이 아까운 기회를 단순히 낙찰률에 따른 이익 감소 차원이 아니라,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 나아가서 국가경쟁력을 어떻게 높여나갈 수 있는지 논의하는 장으로 삼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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