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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미국의 때늦은 인프라 예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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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406회 작성일 12-01-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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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GS건설 경제연구소장)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은 2007년 이후 만 5년째 경기침체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판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할 지 모른다는 우려는 이제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어쩌다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최근 들어 미국의 대표적 지식인들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세계는 평평하다>, <코드 그린> 등을 써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토마스 프리드만은 국제관계학 권위자인 마이클 만델바움과 함께 쓴 <미국 쇠망론(2011)>에서 앞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창조계급’의 등장과 지역개발 논의를 통해 우리 시대 ‘최고 지성인’ 중 한명으로 꼽힌 리차드 플로리다도 <제3차 세계 리셋(2010)>이란 저서를 통해 같은 질문에 답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둘 다 미국 경제의 성장은 도로·항만·공항과 같은 인프라 확충에 힘입은 바가 절대적인데, 현재 미국 인프라 수준은 열악하기 짝이 없고, 결론은 리차드 플로리다가 단언하듯이 “새로운 경제성장을 위해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리차드 플로리다에 따르면, 영국은 1666년 런던 대화재 사건 이후 건물 신축·도로 확장 등의 대규모 공사로 세계경제를 지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도 운하와 철도에서부터 현대식 상하수도 시스템, 연방고속도로가 경제발전을 주도했으며, “새로운 인프라 붐이 일어날 때 마다 미국에는 새로운 성장의 시대가 열리곤 했다”.

 미국의 지금 인프라 수준은 어떤가? 2009년 미국토목학회(ASCE)가 발표한 ‘미국 사회기반시설 성적표’는 D등급이었다. 15개 분야별 시설의 등급도 매겼는데, C+이상을 받은 분야는 단 한 개도 없었다. 특히 항공, 댐, 위험물폐기, 내륙수로, 제방, 도로, 학교, 대중교통체계 및 폐수처리 등의 분야는 모조리 D 또는 D+ 등급에 불과했다. <미국 쇠망론>에서는 미국의 인프라 상태가 이같은 평가보다 실제는 더 나쁘다고 지적한다. 특히 에너지·운송·물 등 3개 분야는 근원적인 ‘생명줄’인데, 이들 세 분야 모두 너무 노후했고, 유효수명이 다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에서 워싱턴 갈 때, 일본 고속철도를 ‘잘못 베껴’ 만든 암트랙 아셀라를 타고 가면 휴대폰으로 긴 통화를 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15분 동안에도 서너번씩 끊어 지니까. 미국 공항은 너무 낡아 아예 사적지로 지정하자고 한다. 시설물만 낡은게 아니고, 미국 건설사업의 비효율성도 심각하다. 그 예로 2010년 5월 중국은 텐진에 23만㎡ 규모의 초대형 컨벤션센터를 32주만에 완공했는데, 미국 워싱턴 지하철은 21개짜리 계단에 불과한 작은 에스컬레이터 2대를 수리하는데 24주나 걸렸다는 사실과 대비시키고 있다. 중국 철도 시스템, 싱가폴 공항이 미국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때 우리도 그랬다(That used to be us)>고 한탄했는데, 그 한탄이 <미국 쇠망론>이라는 한국어 번역본의 원제목이다!

 미국이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확충을 비롯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지만,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어 어렵다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미국 공군의 전략적 대응원칙은 “목표를 관찰하고, 방향을 설정한 뒤, 최선의 대응책을 결정하여, 행동하라”는 것인데, 현재 미국의 정치적 담론에는 “관찰, 방향설정, 의사결정, 행동”은 없고, “잦은 고성, 자기 주장 옹호, 편가르기, 결정의 회피”만 있다고 꼬집는다. 그 결과 “미국의 정치인들이 매주 뇌물을 받고·····교량과 학교 건설, 선구적인 연구에 쓰여야 할 공공자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새로운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면, 어떤 분야에 투자할 것인가?  리차드 플로리다는 또다시 주택시장 활성화나 도로투자 확대를 주장하지 않는다. 경영실패로 몰락한 기업들에 구제금융을 퍼붓는 행위도 반대한다. 그런 것들은 낡아빠진 시대의 인프라고, 낡아빠진 경제체제를 살리고자 하는 헛된 노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인프라에 투자하느냐의 문제를 어떤 종류의 경제체제를 갖느냐의 문제로 보고 있다. 앞으로 전세계 경제는 보스턴에서 뉴욕·워싱턴에 이르는 대규모 경제구역, 런던 주변의 경제구역, 상하이에서 베이징에 이르는 대규모 집중경제구역 등 거대지역(megaregion)이 주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도로가 아니라 미국내 거대지역간의 연결을 위한 고속철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지식인들의 인프라 예찬론은 이 정도에서 끝내자. 적확하고 타당한 지적이긴 하지만,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금융이나 IT만이 아니라 진작에 인프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 왔으면, 이런 때늦은 예찬론은 없었을 것이다. 고속철도의 중요성과 같은 세부사항은 우리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 유형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때늦은 인프라 예찬론은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교훈을 준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구시대적 인프라에  투자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대·IT 혁명의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 우리 경제성장의 방향성과 ‘공간적 해결책’ 내지 ‘공간적 조정’을 함께 고려한 인프라 투자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경제성장이나 공간구조 개편과 괴리된 단순한 인프라 아이템의 나열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이같은 전제 아래 사람?상품?아이디어의 이동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 <미국 쇠망론>에서 주장하듯이, 우리도 인프라 수준을 관찰하고, 투자방향을 설정하며, 올바른 투자의사결정을 한 다음,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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