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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경제는 21세기인데 인프라는 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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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12회 작성일 12-03-1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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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탐사기획팀장  

 건설업체 오너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열에 아홉은 “건설은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사업 아이템으로 건설업에서 더 이상 매력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만나는 K회장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건설업체 오너다. 며칠 전 K회장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근황을 물으니 “보일러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는 이로부터 사업제안을 받았는데 연료를 20% 이상 절감할 수 있는 보일러라서 사업성이 충분할 것 같다”는 자랑도 덧붙였다.

 K회장은 얼마 전까지 해외사업에 큰 관심을 가졌었다. 동남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는 계약이 임박했다는 얘기도 살짝 들려줬었다. 그래서 해외사업의 계약소식을 기대하며 근황을 물었는데 K회장은 보일러 얘기를 꺼냈다. 엘리베이터가 12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너무 짧아 K회장으로부터 더 이상의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K회장이 건설업에 매력을 잃고 새 사업을 고민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K회장의 고민은 우리나라 건설업체 대부분 오너들이 하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K회장이 오너인 T사는 공공사업에 집중해온 건설업체다. 공공사업을 통해 회사규모도 꽤 커졌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수주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사를 따내기가 어려워졌고 어렵사리 수주를 하더라도 수익을 내기가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민간 쪽은 경험이 없을뿐더러 리스크가 크다는 얘기가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해외사업이다. 하지만 해외사업도 쉬운 것은 아니다. 이곳 저곳에서 사업제안이 많아 쉽게 될 것도 같은데 막상 부딪쳐 보면 기대와 같지가 않다.

건설업체 오너들이 “건설은 이제 끝났다”며 건설이 아닌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모습들은 위기에 처해 있는 건설산업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상호 GS건설 경제연구소장은 “우리 건설시장이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도달했다”며 “건설업체들도 이에 맞춰 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회기반시설(SOC)의 확충이나 주택보급률을 따져보면 일견 맞는 말이다. 전국 곳곳마다 고속도로가 깔려 있고 명목상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지 오래됐다. 4대강마저도 정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좁은 국토에서 더 이상 건설할 만한 것이 없어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는 양적인 확충에서만 본 것이다. 질적인 부분까지 따져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지난 1일 미국 시카고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이 민간자본을 이용한 SOC 개선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이매뉴얼 시장이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 이매뉴얼 시장은 “21세기 경제가 20세기 토대 위에 놓여 있다”며 “이를 시대에 맞게 개선하기 전에는 전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25억달러 규모의 빌딩 에너지 효율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원유가격은 배럴당 120달러를 넘겼다. 200달러를 넘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우리 건물들은 원유가격이 배럴당 20~30달러 수준일 때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열효율을 생각하지 않고 지어진 건물이 많은 것이다. 비싼 관리비를 내야 하느냐, 아니면 최소한 리모델링을 해서 시스템이라도 바꿔야 하는지를 건물주들은 선택해야 한다. 도로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최첨단의 시스템을 장착한 신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 도로는 자동차 대부분이 수동기어일 때 설계가 이뤄졌다. 철도는 고속화와 전철화가 21세기의 흐름이다. 이래서 건설은 끝날 수 없는 산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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