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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기로에선 기술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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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881회 작성일 12-04-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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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산업팀장

 

  건설업계에서 통하는 용어로 기술영업이라는 것이 있다. 기술자들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턴키공사와 같이 설계를 평가해 시공사를 결정하는 입찰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생긴 말이다. 기술영업이 생긴 것은 설계서에 구현된 기술적인 부분을 심사위원들에게 설명하고 알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기술영업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면서 끝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한국환경공단의 환경시설사업과 광주시 하수처리장 총인처리시설의 입찰비리 사건이 그것이다. 환경공단에서는 설계분과 심사위원 50명 가운데 14명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9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심사위원들에게 뇌물을 준 건설업체 직원 17명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총인처리시설과 관련해서는 지난 1월부터 12명이 구속돼, 이 중 7명이 기소됐고 앞으로 추가 기소도 예정돼 있다.

 검찰 발표를 보면 업체들은 심사위원들의 신상을 파악한 후 학연·지연을 모두 동원해 심사위원들을 관리해왔다. 간부급 이상 직원을 담당으로 지정해 수시로 식사·상품권·골프 등을 제공해온 것이다. 심지어 해당 업체들은 심사위원에게 뇌물을 건네고 입찰에서 탈락해도 준 돈을 돌려받지 않았다. 다음 기회가 또 남아 있기 때문에 보험을 들어두는 것이다. 뇌물을 받은 심사위원은 돈을 준 업체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고 이것이 업체 선정에 영향을 끼쳤다. 기술영업이 로비로 변질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건설업계에서는 기술자들이 연구소와 현장에 머물지 않고 대학 교수연구실과 발주처 기술부서를 찾아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학연을 내세워 토목, 건축과 교수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기술자의 능력이 됐다.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시공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기술자나 연구개발에만 몰두하는 기술자는 무능력자로 손가락질 받는 세상이 됐다.

 로비로 변질된 기술영업은 로비를 벌이는 기술자나 받는 심사위원 모두를 병들게 한다. 대학 은사를 찾아가 좋은 점수를 달라고 읍소해야 하는 기술자는 스스로 얼마나 자괴감에 빠져 있을까. 대학에서 쌓은 지식을 고품질의 시공물을 만드는 데 써야 하는데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기 힘들 것이다.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다. 대학교수와 공무원, 공기업 간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부끄럼 없이 뇌물을 받고, 심지어는 선불을 요구하는 일까지 있다고 하니 양심에 병이 들어도 깊게 들었다.

 건설산업 입장에서 볼 때도 기술영업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우수한 기술인력들을 생산성이 전혀 없는 일에 투입하고 있으니 인력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 발표를 보면 로비에 들어간 비용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 이러한 돈을 기술개발에 쓴다고 하면 우리 건설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기술영업은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지금과 같은 방법의 영업이라면 제2, 제3의 환경공단과 총인처리시설 입찰비리들이 터질 것이 자명하다. 이들 두 사건에서 검찰이 보여준 수사의 폭을 보면 기술영업을 빗댄 로비들은 언제 수사망에 걸려들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건설사들은 기술영업의 본래 취지를 살리든가 아니면 아예 접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술영업에 쏟아온 노력을 설계 작품성을 높이는 데 더하고, 심의장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펼치는 것이 건설사 모두를 위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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