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갈등과 상생적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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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39회 작성일 12-09-06 09:35본문
윤 영 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죽음과 세금 그리고 또 하나. 무엇일 것 같은가? 그것은 다름 아닌‘갈등’이라 한다.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지만 마냥 싱겁기만 한 말은 아니다. 인간사 자체가 갈등의 연속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갈등 없는 곳이란 없다. 부부갈등과 세대갈등이 있고, 노사갈등, 빈부갈등, 대중소기업갈등이 있다. 지역갈등, 환경갈등, 이념갈등, 남북갈등, 한일갈등, 종교갈등, 인종갈등 등등 갖다 붙이면 갈등 아닌 게 없다. 정말 우리 인간은 죽는 날까지 단 하루도 갈등을 피하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갈등을 싫어한다. 갈등이 생기면 힘들어지고 나의 이익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갈등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다.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갈등이 생기는 이유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갈등은 입장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사람마다 서로 처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 모든 생명은 자기중심적이다. 지구 반대편에 엄청난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도 지금 당장 내 이 아픈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그림자 같이 따라 다니는 것이 갈등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거의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경제학자 이근식은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공동의 갈등문제’라고 정의한다. 공동의 갈등문제는 개인주의 또는 시장원리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개인 간에 이해관계가 상충하지 않는 공동의 문제, 예를 들면 국방이나 공공건설 같은 문제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므로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하여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 간에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많은 문제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적대적 갈등과 상생적 갈등이 그것이다. 갈등 자체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다. 적대적 갈등은 세상을 제로 섬 게임으로 바라본다. 전체 몫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한 쪽이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면 다른 한 쪽의 몫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이런 적대적 갈등의 상황에서는 세상은 이전투구의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생적 관점은 갈등을 좋은 방향으로 이해한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에서는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한다. 지금 당장은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힘들지만 그것을 잘 극복하기만 하면 좀 더 나은 사회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상생적 갈등의 상황 속에서는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윈윈 게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갈등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두말할 나위 없이 적대적 갈등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적대적 갈등으로 인하여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에서 팽배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제로 섬 게임식의 적대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적대적 갈등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으로 집단이기주의를 들 수 있다.‘집단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토론회 등에서 아무리 양심적인 사람도 특정 집단에 소속되면 창피를 무릅쓰고 거품을 무는 것을 자주 본다.
건설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건설업계에는 업역제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업역갈등이란 것이 있다. 원하도급간 갈등이나 대중소기업간 갈등도 넓게 보면 업역갈등의 유형들이다. 건설업계의 이러한 업역갈등 역시 전형적인 적대적 갈등에 해당된다. 제로 섬 게임과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지금 건설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위축되어가고 있는 건설시장을 살려낼 방안에 대해 고심 중이다. 그러나 건설업계 내부의 고질적인 업역갈등을 타파하지 않고서 진정한 위기극복을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회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건설업계도 진정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이룩하려면 현재의 적대적 갈등 관계를 상생적 갈등 관계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 상생적 갈등으로 나아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상생적 갈등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화할 줄 아는 성숙한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건설산업은 경쟁이라는 시장원리가 적용되는 산업영역이면서 동시에 협력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건설산업이 적대적 갈등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정경쟁과 상생협력의 두 축을 보다 든든하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 있는 건설인이라면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공생발전 내지 동반성장의 의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죽음과 세금 그리고 또 하나. 무엇일 것 같은가? 그것은 다름 아닌‘갈등’이라 한다.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지만 마냥 싱겁기만 한 말은 아니다. 인간사 자체가 갈등의 연속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갈등 없는 곳이란 없다. 부부갈등과 세대갈등이 있고, 노사갈등, 빈부갈등, 대중소기업갈등이 있다. 지역갈등, 환경갈등, 이념갈등, 남북갈등, 한일갈등, 종교갈등, 인종갈등 등등 갖다 붙이면 갈등 아닌 게 없다. 정말 우리 인간은 죽는 날까지 단 하루도 갈등을 피하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갈등을 싫어한다. 갈등이 생기면 힘들어지고 나의 이익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갈등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다.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갈등이 생기는 이유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갈등은 입장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사람마다 서로 처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 모든 생명은 자기중심적이다. 지구 반대편에 엄청난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도 지금 당장 내 이 아픈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그림자 같이 따라 다니는 것이 갈등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거의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경제학자 이근식은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공동의 갈등문제’라고 정의한다. 공동의 갈등문제는 개인주의 또는 시장원리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개인 간에 이해관계가 상충하지 않는 공동의 문제, 예를 들면 국방이나 공공건설 같은 문제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므로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하여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 간에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많은 문제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적대적 갈등과 상생적 갈등이 그것이다. 갈등 자체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다. 적대적 갈등은 세상을 제로 섬 게임으로 바라본다. 전체 몫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한 쪽이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면 다른 한 쪽의 몫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이런 적대적 갈등의 상황에서는 세상은 이전투구의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생적 관점은 갈등을 좋은 방향으로 이해한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에서는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한다. 지금 당장은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힘들지만 그것을 잘 극복하기만 하면 좀 더 나은 사회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상생적 갈등의 상황 속에서는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윈윈 게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갈등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두말할 나위 없이 적대적 갈등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적대적 갈등으로 인하여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에서 팽배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제로 섬 게임식의 적대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적대적 갈등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으로 집단이기주의를 들 수 있다.‘집단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토론회 등에서 아무리 양심적인 사람도 특정 집단에 소속되면 창피를 무릅쓰고 거품을 무는 것을 자주 본다.
건설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건설업계에는 업역제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업역갈등이란 것이 있다. 원하도급간 갈등이나 대중소기업간 갈등도 넓게 보면 업역갈등의 유형들이다. 건설업계의 이러한 업역갈등 역시 전형적인 적대적 갈등에 해당된다. 제로 섬 게임과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지금 건설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위축되어가고 있는 건설시장을 살려낼 방안에 대해 고심 중이다. 그러나 건설업계 내부의 고질적인 업역갈등을 타파하지 않고서 진정한 위기극복을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회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건설업계도 진정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이룩하려면 현재의 적대적 갈등 관계를 상생적 갈등 관계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 상생적 갈등으로 나아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상생적 갈등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화할 줄 아는 성숙한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건설산업은 경쟁이라는 시장원리가 적용되는 산업영역이면서 동시에 협력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건설산업이 적대적 갈등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정경쟁과 상생협력의 두 축을 보다 든든하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 있는 건설인이라면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공생발전 내지 동반성장의 의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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