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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버려야 할 소중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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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24회 작성일 12-08-2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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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났다. 가난한 농부는 쌀 한 가마니를 지고, 부자인 양반은 금 한 주머니를 챙겨 피란길에 올랐다. 양반은 “목숨이 걸린 피란길에 몇 푼 되지 않는 쌀가마니를 지고 가느냐”고 농부를 비웃었다. 피란길은 산속으로 이어졌다. 농부는 밥을 해 먹었지만 양반은 먹을 게 없었다. 배가 고픈 양반은 시중 쌀값의 5배나 되는 금붙이를 주며 쌀을 팔라고 했다. 선심을 쓰는 듯한 제안에 농부는 거절했다. 하루가 더 지나자 쌀값의 50배, 또 하루가 지나자 가진 금의 절반을 주겠다고 했지만 농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양반은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금붙이는 무겁기만 할 뿐이었다.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가 없게 된 양반은 농부에게 하소연했다. 죽기 전에 물 한 모금과 밥 한술만 달라고. 농부는 그때서야 물도 주고 밥도 주었다. 이 이야기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멘토이자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 스님의 책에 나온다. 가치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필요에 따라 정해짐을 설명하기 위한 사례다.

문득 이 얘기가 떠오른 건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설립한 호러스 언더우드의 증손자 피터 언더우드가 한국의 미래를 위한 제안서 <퍼스트 무버>의 내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이 극복해야 할 단점과 한계에 관한 것들을 말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는 50년 넘게 우리 스스로 장점으로 믿어왔던 것들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를 있게 만들어준 소중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버려야 할 금과 같은 요소들로 세계가 깜짝 놀랄 성장의 기반이 된 속도와 효율, 목표 달성, 단합된 국민적 에너지 등을 지목한다.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를 통해 보여준 공동체의식, 뜨거운 교육열, 1960~1970년대 경제성장의 바탕이 된 ‘돌격문화’와 재벌시스템, ‘빨리빨리’ 문화 등이 과거 성공의 기반으로 작용했지만 지금은 버려야 할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의 진단이 전적으로 옳지 않다고 하더라도 되새겨봐야 할 충고임에는 틀림없다.

건설에도 버려야 할 부분들이 있다. 빨리빨리 공사, 돌격경영, 수직적 조직구조 등은 분명 과거 산업발전을 주도했던 문화다. 하지만 지금은 평가가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 상품도 그렇다. 외형성장의 틀을 제공한 주택 등도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건설관련 제도도 마찬가지다. 줄세우기 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는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오히려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소는 아닌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치솟는 분양가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도입된 분양가상한제가 이제는 창의성과 소비자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는 걸림돌로 전락했다. 눈에 보이는 예산절감에만 집착하는 최저가낙찰제가 드러내는 폐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선택의 기준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무리 소중한 금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건설산업은 귀로에 봉착했다. 이대로 주저앉느냐, 미래로 도약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과거 소중했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할 때다. 건설문화는 물론 상품, 제도 등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건설산업에 그동안 수많은 혁신이란 단어가 등장했지만 바뀐 건 거의 없다. 운명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위해선 지도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냥 바뀌는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피터 언더우드의 말을 정책결정자들은 가슴으로 꼽씹어야 할 때다.

박봉식 정경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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