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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변화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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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99회 작성일 12-06-2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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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산업팀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신인 주택공사가 발주한 아파트 건설공사는 한때 ‘계륵(鷄肋’)과 같았다. 큰 쓸모나 이익은 없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그런 것이었다. 10년 전 주택공사가 입찰에 부치는 아파트 건설공사에는 5~6개 정도의 건설사밖에 참여하지 않았다. 많아 봤자 10곳을 넘지 않았다. 간혹 입찰참가사가 10곳를 넘겨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라도 하면 본지 기사에는 어김없이 ‘수주경쟁 과열’이라는 헤드라인이 붙었다.

 그 당시는 1000억원 미만 공사에 적격심사제가 적용됐다. 80%대의 낙찰률을 보장받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대다수 건설사들은 주공의 아파트 건설공사를 미련 없이 버렸다. 먹을 것도 없는데 괜히 집어들었다가 손과 입에 기름만 묻힐 수 있는 계륵과 같이 생각했다. 주공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다른 먹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주택경기도 괜찮았고 토목공사 수익률은 주공의 아파트 건설공사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요즘 LH 아파트 건설공사는 수주경쟁이 과열 정도가 아니라 초과열 상태다. 1건 공사에 70~80개 건설사들이 수주경쟁을 펼치고 있으니 말이다. 낙찰률도 70% 초반대에서 형성된다. 급기야 대형사까지 가세했다. 대우건설과 SK건설은 이미 수주경쟁에 깊숙이 발을 들였다. 대림산업은 지난주 23년 만에 LH 아파트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GS건설은 수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찰하고 있으니 조만간 수주의 기쁨을 누릴 게 분명하다. 현대건설은 아직 간을 보고 있는 중이기는 해도 입찰에는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다. 이제 대형사 가운데 LH 아파트 건설공사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업체는 삼성물산뿐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 사이 LH의 아파트 건설공사가 대형사도 수익을 남길 정도로 좋아졌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10년 전에 비해 공사비가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이유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실적공사비 제도가 확대 적용되면서 공종별 단가는 크게 낮아졌다. 낙찰률도 과거 적격심사제가 적용될 당시보다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그런데도 대형사를 포함한 건설사들이 LH의 아파트 건설공사를 수주하지 못해서 난리다.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능이 우수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LH의 아파트 건설공사 입찰환경이 몇 년 새 크게 바뀐 것은 바로 살아남기 위한 건설사들의 몸부림이다. 지금의 건설시장은 이것저것 가려가며 수주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일이 없는 직원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는 한 개 현장이 아쉬운 게 건설사들의 처지다. 따라서 과거에는 남지 않던 공사도 남길 수 있도록, 아니 최소한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지금의 건설환경이다.

그런데 다윈이 말한 변화는 진보를 뜻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저 변화에 그칠 뿐이며 진화는 정해진 목적 없이 진행된다고 한다. 좋은 진화, 나쁜 진화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등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꿋꿋이 살아남아 생을 영위하는 생물들이 이를 증명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건설사들이 LH 아파트 건설공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변화는 혹시 이런 류가 아닐까. 기술과 시스템의 발전이 함께하는 진보가 아닌 그저 쥐어짜기 식의 단순 변화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변화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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