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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10대사 공동도급 제한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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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98회 작성일 12-09-0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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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공건설시장은 포화상태다. 물량은 한정돼 있는데 업체 수는 넘쳐난다. 그래서 모두가 경쟁자다. 내 곳간을 채우려면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 현상을 유지하려면 내게 주어진 것을 뺏기지 않아야 한다. 4년 전의 일이다. 조달청이 일괄입찰 등의 공사입찰특별유의서를 개정했다. 이를 통해 상위 10위권 내 업체 간 공동수급체 구성을 제한했다. 정부 예산절감과 중소업체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대선을 앞둔 지금 한창 유행인 경제민주화를 몇 년 앞서 실현했다고나 할까.

 상위 10개사는 당연히 반발했다. 헌법에 보장된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역차별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시장은 환영했다. 건설업체 수로 볼 때 1만 수천 대 10의 게임이니 당연했다. 대다수 건설사가 환영한 데는 그들만의 계산이 있었다. 가령 입찰에 나온 공사가 1000억원짜리라고 가정하자. 종전 상위 10개사는 30:20:20 정도의 비율로 공사를 가져갔다. 10개사 이외 나머지 업체들에 돌아오는 물량은 많아야 30%다. 하지만 상위 10개사 공동도급이 제한되면 나머지 업체들은 더 많은 물량을 가져올 수 있다. 컨소시엄에 들어갈 공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대는 맞아떨어졌다. 공동도급을 통해 대형사로 분산됐던 물량 중 일부가 중견ㆍ중소업체로 배당됐다. 어떤 공사는 60% 넘게 중견ㆍ중소업체에 물량이 떨어지기도 했다. 기술형 입찰공사에서 경쟁력을 갖춘 일부 중견업체는 캐스팅보트를 쥐기도 했다. 중견사 간에는 서로 10위권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중견ㆍ중소업체들은 보다 풍성해진 수주물량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까.

 기대는 허상이 돼 버린 지 오래다. 기술형 입찰공사의 비용 문제는 건설업체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이는 10개 대형사뿐 아니라 이외 업체 모두에 해당한다. 상위 10개사 공동도급제한은 과당경쟁을 불러왔다. 종전 2~3개 컨소시엄이던 수주경쟁이 4~5개 컨소시엄으로 늘었다. 심지어 8개 컨소시엄이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서 사단이 났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수주가 판을 쳤다. 어렵게 수주에 성공한 컨소시엄 구성원들은 적자로 인한 분담금에 서로 얼굴을 붉혔다. 수주하지 못한 수십개 건설사는 설계비용에 허리가 휘었다.

 상위 10개사 공동도급 제한은 네것이 내것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었다. 내것과 네것 모두 빼앗기는 마이너스 게임이었다. 조달청이 명분으로 내세운 중소업체 보호는 실패했다. 수백개 중소업체들이 이 제도의 폐지에 연대서명한 것만 봐도 그렇다. 조달청은 다른 명분인 예산절감에는 성공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건설산업의 피폐를 담보로 했다. 진정한 성공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이 제도는 법적 근거마저 없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가계약법령에 명시된 공동수급체 구성 제한 사유 이외의 사유를 근거(시공능력평가액 기준)로 일부 대형업체 간 공동수급체 구성을 제한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공공 발주기관과 민간의 거래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칙이 없으면 발주기관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게 된다. 그 원칙을 정한 것이 바로 국가계약법령이다. 명분도 없고 법적 근거도 없다면 상위 10개사 공동도급제한은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이제 조달청이 움직일 일만 남았다.
권혁용 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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