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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한 선량(選良)의 고요속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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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185회 작성일 12-09-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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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국회 대정부질문.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소신 있는 선량(選良)이 눈길을 끌었다. 김희국 의원(전 국토해양부 제2차관)이다. 김 의원은 정부 공사발주제도와 주택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폭로한 박계동 민주당 의원의 질문처럼 파괴력이 있지도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때 한 첫 대정부질문같이 감성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곪아가는 건설산업의 현실을 차분하게 짚어내 공감을 받았다.

발언 요지는 정부가 공사를 터무니없이 싼값에 발주한다는 것이다. 공사비 산정 단계부터 문제다. 현재 적용하는 실적공사비제도는 공사에 실제로 들어간 비용이 아닌 계약단가로 예정가격을 산정한다. 건설사들이 수주를 위해 원가보다 낮게 써낸 가격으로 예정가격을 산정하고 그 가격이 다시 예정가격이 되기 때문에 갈수록 단가가 떨어지는 모순이 악순환된다. 결국 실적공사비는 ‘0’으로 회귀될 것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원청 및 하청은 물론, 자재 장비업체 등 관련업체들을 골병 들게 하는 제도란 게 그의 진단이다.

발주제도의 불공정성도 강하게 비판했다. 항간에 불공정 계약을 ‘을사조약’, 즉 을이 죽어나는 조약으로 패러디하고 있는데 이런 관계에서 가장 강력한 갑이 정부다. 최저가낙찰제도 도덕적 의무를 상실한 제도다. 정부가 대기업에 제값을 주라고 하지만 정부로부터 제값을 못받았는데 어떻게 제값을 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춘향전>에 나오는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금동이의 좋은 술은 천인의 피요) 옥반가효 만성고(玉搬佳酵 萬成膏:옥반 위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라는 시구를 예로 들며 국가가 민간기업의 살과 뼈를 갉아 먹는 제도라고까지 거세게 지적했다.

대정부질문은 초선인 그에게는 첫 데뷔 무대다. 게다가 그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다. 요즘 복지라는 말만 하면 지나가는 개도 돌아보는 때다. 화려한 수사로 복지정책을 질타하면서 스스로를 클로즈업 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 기회를 마다하고 첫 대정부질문에서 건설발주제도를 주제로 삼은 이유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김 의원의 주장이 새로운 것은 없다. 건설업계가 해온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고 폄하할 수도 있다. 의혹의 눈길을 보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발주제도를 들고 나온 것은 문제의 심각성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다. 삼척동자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을 정부만 고개를 돌리고, 이로 인해 건설분야 종사자 가족 약 600만명(종사자 230명 가족당 2.5명으로 환산)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 같은 관행이 지속된다면 향후 국가와 사회가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예산을 더 주자는 것이다. 실적공사비제도와 최저가낙찰제도의 기본 취지가 예산절감인데 이를 고치자는 것은 혈세를 더 쓰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돌 맞을 소리다. 국회의원인 그에겐 돌 맞는 것보다 더 무서운 표 떨어지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석이 아닌, 전 국민이 지켜보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그런 겁없는(?) 주장을 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전 수십년 동안 공직에 몸담아 온 그가 현장에서 보고 느끼며 가슴에 담아 둔 절박한 진실을 절규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이유다.

과거 ‘가족오락관’이란 방송 프로그램 중 ‘고요 속에 외침’ 코너가 큰 인기를 끌었다. 팀 구성원들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헤드폰을 쓰고 속담 등을 마지막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이기는 게임이다. 그러나 팀원을 거치는 동안 속담은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잘못 전달된다. 듣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딱 그 모양새다. 지금은 헤드폰을 벗고 건설인들의 외침을 들어야 할 때다.  
박봉식 정경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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