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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자 앞을 가로막고 나선 기관장과 시민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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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032회 작성일 12-12-2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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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 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시가 입찰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턴키발주방식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주책임자가 아닌 서울시장이 직접 나섰다. 발주자는 보이지 않고 기관장만 보인다. 입찰비리가 시장과 시민단체가 앞장서야 할 만큼 만연해 있는 가. 건설을 모두 부정한 부패집단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인가. 비리를 통해서만 공사를 수주 할 만큼 입찰방식이 허술 한 것인가. 허술한 입·낙찰제도를 만든 당사자 책임은 없는가. 부패의 1차 책임은 비리가 가능하도록 한 발주기관에 있지 않는가.

 필자는 12월8일부터 일본 교토대학에서 개최된 국제건설공사발주 및 계약제도 z콘퍼런스에 참석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등 선진국 대표들의 설명을 경청하면서 국내 발주 및 계약 제도를 설명하는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국내제도가 중국이나 싱가포르보다 못했을 뿐만 아니라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세계적인 흐름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토콘퍼런스를 통해 확인된 선진국의 발주 및 계약제도의 흐름을 짚어보고 서울시의 최근 조치에 대해 시사점을 주고자 한다. 일부에서 잘못 알고 있는 사실도 지적 해 본다.

 선진국 발주 및 계약제도의 공통된 흐름을 짚어본다. 먼저 전통적인 설계와 시공분리발주에서 턴키(DB), 책임형 CM(CMr), 통합발주(IPD) 등 제 3의 방식으로 빠른 속도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정부와 의회가 함께 2010년도에 승인했던 경기부양예산 8,900억달러의 90%가 비전통적인 발주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는 미연방조달청(GSA) 건설본부사업책임자의 논문과 설명이 있었다. 두 번째 흐름은 어느 나라도 생산성을 중요시하지만 낙찰금액을 낮추기 위한 수단으로 무조건적 최저가낙찰방식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입찰자들에게 합리적인 입찰금액 제출을 유도하기 위해 비가격 요소 확대와 평가기준을 강화시키고 있다. 낙찰금액을 올리기 위해 발주기관 및 싱가포르과 같이 규제기관이 앞장서고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이유는 분명 해 보인다. 제3의 발주 및 계약방식이 발주자 및 계약자 모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게 공통된 결론이었다. 세 번째 흐름은 비가격 요소에 대한 평가기준과 배점을 높이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비리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투명성 확보에 대한 방안들이 동시에 강화되고 있다. 어느 나라도 비리 때문에 특정 발주 및 계약방식을 없애지 않는다.

 국내 공공공사 시장에 주는 시사점 혹은 잘못 알고 있는 점도 발견되었다. 첫째 발주 및 계약방식별 생산성 비교 척도를 어느 국가도 입찰단계에서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공통적으로 입찰단계에서 낮은 금액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방안으로 낙찰가를 높이는 데 발주기관들이 주력하고 있다. 생산성 평가를 공사기간, 설계변경 금액, 품질 등을 종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낙찰차액을 국고절감으로 인식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둘째 턴키방식에 대한 인식이다. 미국조달청이나 영국대학에서 온 발표자 모두가 공통적으로 턴키방식이 확대되는 이유를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째가 분리 방식에 비해 턴키방식이 공기와 가격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둘째가 턴키방식의 계약자 위험부담을 당연히 가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턴키방식이 분리방식에 비해 준공가격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짧은 공기만큼 시설물 운영기간이 빨라짐으로 인한 혜택을 가격으로 보고 있다는 점과 턴키로 인한 위험부담 프리미엄 가격 인정을 당연 시 하기 때문에 입찰자보다 발주자에 더 유리하다는 해석이다. 셋째는 발주기관의 책임과 역량 문제다. 선진국 어느 국가도 국내와 같이 발주자가 아닌 제3기관이 발주 및 계약 행위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미국조달청의 경우 자체 발주공사도 자체내에서 전문기관(PMC)의 도움을 받아 집행하고 있다. 국내와 같이 발주기관이 발주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를 볼 수 없었다.

 서울시는 턴키방식 중단을 선언하면서 대안으로 기술제안입찰방식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담합과 비리를 차단하고 입찰참가비용을 줄이기 위한 배려라는 주장이다. 턴키나 기술제안입찰방식 모두 평가자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 평가 요소가 핵심이다. 비가격 요소 비중이 높다. 입찰서 평가 과정에 시민단체를 참가시켜 감시하겠다는 것도 이상하다. 발주자의 평가 역량 강화를 위한 대책이 아니라 감시로 투명성을 확보 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다. 발주자와 건설업체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건설공사는 경험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기술과 경험은 가격이 아니라 정성적 평가에 의해 좌우된다. 이를 감시자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은 건설기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부터라도 담합과 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힘을 쏟는 게 원칙이다. 발주자의 책임 회피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국가가 택하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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