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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 표절 문화와 건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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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978회 작성일 13-01-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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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민 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

몇 년전 건축사 시험에서 부정 행위가 있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교실을 수험장으로 빌렸는데, 응시자들이 벽면이나 책상 표면에 예상답안을 빽빽히 적어놓아 다음날 등교한 학생들이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다행히 해당 협회에서 현장 조사후 도색 등에 필요한 경비를 전액 변상해서 문제를 진정시켰다고 한다.

표절도 심각한 상태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우리 사회에서는 부단히 자료를 다운받고 짜집기하기에 열심이다. 심지어 대학교 앞에서 학위 논문 등을 대필하는 직업도 생겨나고 있다. 연구기관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저자명이 삭제된 채 인터넷 사이트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치팅(cheating)과 표절 문화는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병폐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부정에 대하여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가 사회 생활에까지 연장된다는 것이다. 치팅이나 표절 문화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조그만 부정에 대해서 그리 큰 자책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생각까지 갖고 자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진국의 예를 보면, 이러한 치팅과 표절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다. 미국의 경우, 학교에서 부정 행위가 적발되면 곧바로 퇴학 조치가 이루어진다. 동료 학생들 간의 감시도 심해 감히 치팅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백지 답안지를 내는 것이 오히려 장래를 위해 이득이라는 심리가 지배적이다. 표절도 마찬가지이다. 서구에서는 한 문장에서 6개 이상의 단어가 일치하면 표절로 의심받으며, 전적으로 실수 혹은 우연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제적까지 각오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학위 논문을 표절하면 5년간 국가시험 응시를 제한한다. 즉, 이러한 엄격한 문화가 사회적으로 온정주의와 비합리성을 배격하는 기반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건설업에서도 치팅과 표절 문화가 가져오는 폐해가 심각하다. 그동안 고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문제 가운데 재건축·재개발 등과 연계된 도시계획심의나 턴키설계심의, 민자사업자 선정 과정의 로비가 있다. 선진국의 예를 보면, 발주자가 입찰자를 제한하고, 인터뷰나 협상 등 다양한 주관적 심의 방식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입찰 과정에서 약간의 주관적 심의가 개입되더라도 입찰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치팅이나 표절 문화의 연장 속에서 심의를 맡은 자가 부정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워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술제안입찰 등 발주기관의 주관적 평가가 개입되는 입찰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1개 회사의 기술제안 건수가 3백건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많은 건수를 심의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많은 제안이 순수한 그 회사의 기술력인지도 궁금하다. 당연히 표절이나 카피가 상당 부분 섞여있을 것이다. 또, 최저가낙찰제 저가심의를 보면, 어느 회사가 저가 사유를 발견하면 곧바로 통용되어 누구든지 제출하는 사유가 된다. 지적재산권이 거의 존중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심지어 낙찰을 위해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국내의 사회 환경을 고려할 때, 객관적 평가를 중시하는 입찰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일례로 적격심사낙찰제가 운찰제로서 비판을 받고 있으나, 해당 프로젝트에 적합한 평가 체계를 강화한다면 가격과 계약이행능력을 동시에 고려한다는 측면에서 장려할 만한 입찰 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기술경쟁을 강화하려면 주관적 평가가 개입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발주자의 능력 향상과 더불어 책임 의식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외국에서 인터뷰나 협상 등의 방식을 활용하는 이유는 입찰자의 기술력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시공계획서나 기술제안서가 타 회사의 기술을 카피하거나 표절한 것이라면 협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걸러지게 된다.

또, 기술 경쟁을 확대하려면, 주관적 평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주관적 평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일례로 외부 심의위원을 공모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발주처에서 청렴하고 능력있는 심의위원을 찾아내어 섭외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주관적 평가가 낙찰자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현상도 개선해야 한다. 미국이나 싱가폴 등 외국 사례를 보면, 설계나 기술제안점수, 투찰가격, 계약이행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최종 낙찰자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끝으로 건설업계도 자성어린 노력이 필요하다. 담합이 부정적인 용어로 쓰이고 있으나,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도시계획심의나 턴키 로비를 절대 하지말자는 신사협정을 하면 어떨까? 요즈음에는 업체간 담합이 매우 어렵다던데, 이러한 담합도 단속 대상이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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