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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물꼬를 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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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104회 작성일 13-02-1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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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일 동 논설위원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난 1993년 일성이다. 당시 삼성은 국내 1위 그룹이었다. 하지만 삼성 제품은 미국 맨해튼 전자상가에선 푸대접을 받았다. 한쪽 구석에 진열될 상품엔 먼지만 쌓였다. 이 회장은 참담한 심정으로 혁신의 ‘신경영’을 선언했다.

그룹 오너의 이같은 선언에 임직원들도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후 삼성은 거대한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탔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세계의 강자로 우뚝 섰다. 덩치와 실속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챙겼다.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한 것이다.

인간은 변화를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변화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명상록>에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적시했다. 하지만 그는 변화 없이 생성될 수 있는 것 또한 없다고 단언했다. 기업도 생물이다. 때문에 기업도 편안하고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혁신의 물결을 넘지 않고서는 발전이 없다. 삼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21세기에는 더욱 그렇다.

“매운탕 이상하지 않냐. 알이 들어가면 알탕이고 갈비가 들어가면 갈비탕인데 이건 그냥 매운탕, 탕인데 맵다. 그게 끝이잖아, 안에 뭐가 들어가도 다 매운탕, 맘에 안들어,” 영화 건축학개론의 여자 주인공 서연(한가인 분)의  말이다.

이 대화를 보면서 건설업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건 왜일까. 건설업은 알탕도 아니다. 갈비탕도 아니다. 그냥 매운탕이라는 생각이다. 건더기는 뭐라도 상관없다. 잡다한 게 들어가도 맵기만 하면 된다. 식재료에 색깔이 없다. 종합건설업체는 시공의 백화점이다. 다리도 놓는다. 길도 낸다. 건물도 짓는다. 다 잘한다. 다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평범하다는 뜻이다.  나만의 특색이 없는 것이다.

건설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너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대형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룹 계열 건설사는 타사로부터 자금 수혈받기 바쁘다. 그룹 계열사가 아닌 건설사도 빈사상태에 빠진 곳이 허다하다. 100위 이내 건설사의 5분의 1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상태다.

그렇다고 이번 위기가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다. 성숙기로 접어든 건설업의 구조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설시장의 최대 고객은 정부다. 최근의 대선에서 보았듯이 정부가 돈을 써야할 곳이 너무 많다. 보편적 복지를 우선적으로 실현하려 한다. 한정된 재원에 건설분야 예산을 늘릴 재간이 없다. 건설시장의 한 축인 민간부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가 점쳐진다. 주택보급률도 100% 넘어선지 오래다. 수요가 늘어난다는 가망이 별로 없다. 공공, 민간 모두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건설사는 옛날 그대로의 옷을 입고 있다. 변화의 물결을 애써 외면한다. 옷이 몸에 맞으면 그 뿐이다. 유행에 뒤쳐진다. 수십년을 그렇게 흘러왔다. 수주산업이란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포장하면서 말이다. 위기도 시장의 위기로 치부한다. 관성의 법칙에 의해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조선업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선업도 건설업과 비슷한 수주산업이다. 둘 다 분업과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생산방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조선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일류산업이 됐다. 왜일까. 혁신과 특화된 수요창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크 없이 선박을 만드는 육상건조공법을 도입했다. 배를 건조하기 전에 컴퓨터로 미리 조립해보는 사이버탑재 공법도 세계 최초로 실시했다. 드릴쉽 등 고부부가치 특화 분야도 개척했다.

건설업도 시장 지향적 변화를 도모했다. 아파트에 브랜드를 도입했다. 신평면을 개발해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했다. 경관조명을 통해 심미적 요소를 가미하기도 했다. IT기술을 활용한 첨단아파트도 선보였다. 에너지 절약 주택을 건설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아직까지 아파트는 판상형 일색이다.

일본 건설기업을 보자. 한 때 잘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계 시장에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세계 10위 이내 기업 중 일본 건설사는 전무하다. 유럽 건설사가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제네콘은 90년대 중반 버블붕괴 이후 성장동력을 잃었다. 사업다각화 없이 내수시장에만 치중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성장은 정체됐고 수익률은 급락했다. 가지마, 타이세이, 시미즈 등 일본 톱 3 업체의 2010년 순이익률은 평균 1.4%에 그쳤다.

우리나라 건설업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처방전 마련이 쉽지 않다. 원인이 복합적인 합병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좋은 날 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수요창출에 나서야 한다. 일본기업의 쇠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부도 건설시장에 새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업성 악화의 원인이 그 옛날 그 제도에 있기 때문이다. 규제의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두꺼워진 건설산업기본법, 국가계약법령집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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