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여우와 두루미, 그리고 정부와 건설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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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희대학교 댓글 0건 조회 1,520회 작성일 13-03-08 09:59본문
권혁용 산업팀장
누구나 이솝 우화의 이야기 한두 개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다보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궁극에는 승리한다는 내용의 토끼와 거북이.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라는 교훈을 주는 개미와 베짱이. 이솝 우화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도덕적인 교훈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세대가 바뀌어도 꾸준히 읽히며 사랑받고 있는지 모른다. 도덕적 교훈이라는 것이 반 영원불변일테니 말이다.
이솝 우화에는 ‘여우와 두루미’라는 이야기도 있다. 다들 아는 우화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여우와 두루미는 친구다. 여우가 어느 날 두루미를 초대했다. 여우는 납작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내왔다. 부리가 있는 두루미는 당연히 음식을 먹지 못했고 여우는 두루미의 음식까지 다 먹어치웠다. 이어지는 내용은 알다시피 두루미가 호리병으로 여우에게 복수를 하고 결국 여우와 두루미는 서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난다.
갑자기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 얘기를 꺼낸 것은 이 이야기와 기가 막힐 정도로 똑같은 상황이 정부와 건설업체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공사기간 연장으로 인한 추가비용인 간접비 문제다. 공사를 수행하다 보면 예기치 않게 공사기간이 늘어나는 일이 발생한다. 이 때 시공사에게 책임이 있으면 시공사가 발주기관에게 지체상금을 내야하고 발주기관의 책임이면 발주기관은 시공사에게 공기연장에 따른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건설업체들은 지체상금을 꼬박꼬박 물면서 간접비는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만든 제도 탓이다. 지체상금은 요율 방식이어서 빠른 계산이 가능하다. 따라서 발주기관은 시공사로부터 쉽게 납부받을 수 있고 금액의 산출에 있어서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간접비는 실비산정 방식이다. 비용의 산출이 어려울뿐더러 실비에 대한 객관성과 타당성을 검증받는 것도 까다롭다. 더욱이 정부의 예산작성 준칙에는 간접비 지급에 관한 규정이 없어 허울뿐인 계약조건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건설업체들은 아예 간접비 청구를 포기하거나 소송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행동이 납작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두루미를 골탕 먹인 여우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두루미는 똑같은 상황으로 복수를 해서 여우의 잘못을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정부가 하는 것처럼 건설업체가 지체상금을 물지 않으면 정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이솝 우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 경우 건설업체는 발주기관으로부터 계약 미이행에 따른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아 정부 공사에 대한 입찰참가를 봉쇄당한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는 것이다.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가 주는 교훈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접비와 지체상금만을 놓고 보면 정부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일방통행이다. 건설업체가 들이는 비용은 나몰라라는 식이다. 정부는 입찰 참가사가 다수라는 점을 이용해 가격경쟁을 부추기는 최저가제 방식으로 많은 공사의 입찰을 집행하고 있다. 그리곤 건설업체들에게 최상의 시공물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건설업체들에게 시공사로서의 책임을 요구하려면 먼저 스스로가 떳떳해야 한다. 정부는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가 주는 교훈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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